지인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가족 명의 계좌로 넣어달라"는 요구에 송금했다가 낭패를 겪는 채권자가 적지 않다. 변제일이 지나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채무자는 "내 통장으로 받은 적 없다"고 발뺌하고, 계좌 명의자인 배우자는 "모르는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민사상 대여금 반환 청구의 주된 상대방은 실제로 돈을 빌리기로 약정한 '실제 채무자'다. 민법 제598조에 규정된 소비대차계약은 금전을 빌리고 반환하기로 합의한 당사자 사이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송금 계좌가 배우자 명의였더라도 실질적으로 차용을 요구하고 변제를 약속한 주체가 채무자라면, 계약 당사자인 채무자 본인을 주된 피고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소송 상대를 한쪽만 지목했을 때 생기는 법적 공백이다. 계좌 명의인에게만 대여금 반환을 청구하면 법원은 "차용 약정을 맺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기 쉽다. 반대로 실제 채무자에게만 청구하면 송금 내역이 명의인 계좌로 남아 있어, 채무자가 수령 사실을 부인할 경우 차용 관계 입증에 애를 먹을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두 사람을 한 번에 묶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을 유력한 해법으로 제시한다. 민사소송법 제70조는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에 대한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에 대한 청구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을 때 이들을 공동피고로 삼아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송명호 변호사는 네이버 지식iN 법률상담 답변에서 "채무자가 돈을 빌린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채무 관계가 불분명해질 경우에 대비해, 법률상 원인 없이 돈을 송금받은 명의자인 배우자에게도 반환 의무를 청구할 수 있도록 주위적 및 예비적 공동소송 형태로 소장을 구성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차용 약정을 맺은 채무자를 '주위적 피고'로 지정해 대여금 반환을 구하고, 통장 명의자인 배우자를 '예비적 피고'로 삼아 민법 제741조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구조다. 이렇게 구성하면 법원은 양쪽 청구를 모두 심리해 둘 중 한 사람에게는 반환 판결을 선고하므로 채권자가 완전히 패소할 위험을 덜 수 있다.

채무자가 처음부터 변제할 능력이나 의사 없이 타인 명의 계좌를 악용해 돈을 가로챘다면 형법 제347조 사기죄 고소도 검토할 만하다. 수사기관의 금융계좌 조사를 거치면 자금의 최종 귀속처와 차명 계좌 이용 경위가 밝혀져 민사 재판에서도 유리한 근거로 쓰인다.

분쟁을 예방하려면 금전 거래 당시 객관적 증거를 남겨야 한다. 차용증에 채무자의 지시로 입금하는 특정 계좌라는 사실을 명시하거나, 문자메시지와 통화 녹음으로 채무자가 타인 명의 통장에 입금을 요청한 사실을 명확히 기록해 두는 절차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