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와 다투다 구두로 해고를 통보받은 근로자에게 "출근해 사직서를 쓰라"고 요구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다.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했더라도 사직서에 서명하는 순간 법적으로는 근로계약 합의해지, 곧 '자진 퇴사'로 처리된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이나 실업급여 수급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과 제2항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할 때 반드시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구두나 모바일 메신저로 전한 해고 통보는 법률상 무효다. 그러나 사업주가 구두 해고 뒤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면 통지 의무 위반과 부당해고에 따르는 복직·임금 지급 책임을 면하고, 겉으로는 근로자가 스스로 그만둔 모양새를 갖추려는 목적이다.

법원은 사직서 제출 행위를 엄격하게 판단한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사직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내게 한 뒤 수리했다면 실질적인 해고로 인정해 왔다(2016다255910 판결 등). 반면 민법 제107조 제1항의 '진의 아닌 의사표시(비진의표시)' 법리에 비추어 다른 판단이 나오기도 한다. 근로자가 속으로는 원치 않았더라도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여겨 사직서를 냈다면 유효한 자진 사직으로 해석될 위험이 크다(2002다11458 판결).

실제로 사직서라는 외관이 갖춰지면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에서 해고 사실 자체를 입증하지 못해 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의원실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수치가 드러난다.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중앙노동위원회와 13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판정에 들어간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4,211건 가운데 노동자 손을 들어준 비율은 26.9%(1,134건)에 그쳤다. 자진 사직서가 제출된 사건일수록 해고 입증 책임이 있는 근로자가 불리한 판단을 받기 쉽다.

전문가들은 사업주가 사직서 작성을 강요하더라도 서명하지 말고 명확히 거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률 상담 현장에서도 사업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써 줄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구두 해고 당시 대화 녹음이나 통화 기록,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 입증 자료부터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업장을 방문해야 한다면 대화 전체를 녹음해야 한다. 사업주에게 근로기준법상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적은 '서면 해고통지서'를 정식으로 발급해 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안전하다. 직접 대면하기 어렵다면 서면 요구나 이메일, 문자메시지로 사직서 작성을 거절하고 해고통지서 교부를 신청하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부당해고를 다투려는 근로자는 해고가 발생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야 한다.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한다면 구제명령서나 기각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