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주택 매매가 막히거나 자금 마련이 어려워져 신축 아파트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수분양자들이 분양권 해약 방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계약금을 포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더라도 중도금 대출이 한 번이라도 실행됐다면 시행사 동의 없이 계약을 끝낼 수 없다.

민법 제565조 제1항은 매매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 계약금을 교부한 경우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계약 당사자 일방이 이미 채무 이행에 착수했다면 착수한 당사자 본인 역시 계약금을 포기하며 해약금 해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99다62074 판결). 시행사 연계 중도금 대출이 실행돼 분양대금 일부가 들어간 시점부터 객관적인 이행 착수로 본다.

공정거래위원회 아파트 표준공급계약서 역시 수분양자가 사정상 계약을 해제하려면 중도금을 1회라도 내기 전이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중도금 납부 후에는 공급자인 시행사가 인정할 때만 해제할 수 있고, 공급대금 총액의 10%에 이르는 위약금이 부과된다. 수분양자의 기존 주택 매도 실패나 유동성 부족 같은 개인 사정은 법률상 정당한 계약 해제나 취소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으로 분양받았더라도 계약을 정리할 때는 상당한 금전 부담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수분양자의 잔금 미지급으로 분양계약이 해제되면 중도금 대출이자 대납 약정도 소급해 효력을 잃는다고 판결했다(2018다290801 판결). 이에 따라 수분양자는 원상회복의무로 대납이자 전액을 분양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반환금에는 분양자가 대납한 날부터 기산한 법정이자까지 더해진다.

수분양자가 해제 통보만 한 채 입주지정일을 넘기면 연체료와 대출이자 부담은 빠르게 불어난다. 금융기관 중도금 대출 연체가 시작되면 신용도가 떨어지고, 보증인 지위에서 대출 원리금을 대위변제한 시행사가 수분양자 재산을 가압류한 뒤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낼 위험도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계약서와 대출약정서를 면밀히 살펴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분양 당시 시행사의 허위·과장 광고나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 3개월 이상의 입주 지연 등 법률상 정당한 취소 사유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법적 귀책사유를 찾기 어렵다면 일방적인 통보에 그치기보다 내용증명 발송과 조정을 거쳐 위약금과 대납이자 범위를 확정한 뒤 합의해제를 끌어내는 편이 현실적인 손실 축소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