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지인 부탁으로 이름만 올려둔 이른바 ‘바지대표’라도 법인 장부에 누적된 수억 원대 가지급금을 소명하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회삿돈을 병원비나 생활비 등 사적 용도로 쓴 사실이 드러나면 법인파산 과정에서 업무상횡령 혐의가 적용된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더라도 채무를 면책받지 못해 민·형사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중소기업이나 가족기업에서는 실질 경영자가 영수증 처리가 어려운 경비나 개인 자금을 법인 계좌에서 인출해 장부상 ‘가지급금’으로 쌓아두는 일이 잦다. 법인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은 재무상태표의 자산과 부채를 전수조사한다. 이때 장부에 적힌 대표자 가지급금은 법인이 대표이사에게 회수해야 할 대여금 반환 채권으로 즉시 분류된다.

법원 판례는 가족회사라도 법인 자금을 사적으로 쓰면 횡령죄를 엄격히 인정한다. 대법원은 1인 회사나 가족회사라 하더라도 회사 자금을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 채무 변제나 생활비 등 사적 용도로 지출했다면 횡령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2005도741). 이사회 결의나 변제기 약정 없이 장기간 가지급금을 인출한 행위는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다(2010도3399).

가지급금 규모가 5억 원 이상이면 처벌 수위가 급격히 무거워진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제3조 제1항 제2호는 업무상횡령으로 얻은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벌금형 선택지가 없고 징역형 하한이 3년이어서, 사적 유용 액수가 5억 원 미만임을 소명하지 못하면 실형 선고 위험이 커진다.

명의를 빌려줬을 뿐이라며 개인회생 채권자목록에 가지급금 반환채무를 넣는 방안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625조 제2항 제4호는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으로 규정한다. 수사나 재판을 거쳐 업무상횡령 유죄가 확정되면 개인회생 인가를 받아 변제계획을 마치더라도 남은 원금을 끝까지 갚아야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남성태 변호사는 “장부의 5억 원이 곧 횡령액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누구에게 지급됐고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가 관건”이라며 “아버지가 실제 운영했다는 사정만으로 대표자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고, 개인회생 채권자목록에 넣었다고 형사 고소를 막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형사 전문 김선호 변호사도 “법인파산에서 파산관재인은 정상적 기업 운영과 무관한 가지급금을 자금 유용이나 횡령으로 의심해 구체적 해명을 요구한다”며 “자금 사용내역, 입출금 전표, 계약서, 이사회 의사록 등 금융·회계 입증 자료를 사전에 준비해 업무 관련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파산 신청 전 금융거래 내역을 날짜와 수취인별로 역추적해 실제 업무에 쓴 지출을 분류하는 작업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궁지를 모면하려 사후에 허위 영수증을 꾸미거나 소급 차용증을 만들면 사문서위조는 물론 채무자회생법상 사기파산죄까지 겹친다. 처벌 수위가 가중될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