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성폭행 사건에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처분을 내렸더라도, 고소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인식해 고소했다면 함부로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사기관의 불송치나 불기소 처분 같은 소극적 증명만으로는 신고 사실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26년 10월 8일 판결했다(2026도1865).

사실관계

A 씨는 2021년 1월부터 3월 말까지 남성 B 씨와 교제했다. B 씨는 자녀 2명을 두고 이혼한 사실을 숨겼고, A 씨는 2021년 5월 B 씨 자택을 방문했다가 가사도우미에게서 사실혼 및 자녀 동거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후 A 씨는 2021년 12월 "B 씨가 관전클럽에서 알 수 없는 물질을 탄 술을 마시게 해 항거불능 상태에 빠뜨린 뒤 세 차례 강간하고 신체 부위 촬영물을 반포했다"며 B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B 씨에게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A 씨의 고소 내용이 허위라며 A 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 씨가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는 A 씨의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된 상태였다.

1심·원심 판단

원심은 A 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경찰이 B 씨에게 불송치 결정을 내린 점과 A 씨가 강간 피해를 주장하는 시점 이후에도 B 씨에게 항의하지 않고 연인 관계를 유지한 점을 주된 근거로 삼았다. A 씨의 모발 검사에서 기존 복용 약물 외에 다른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점도 유죄 판단의 이유가 됐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라는 점을 검사가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범죄사실 증명이 부족해 내려진 불송치 처분만으로는 신고 사실을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가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므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와 형사상 강간죄 성립 여부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느껴 고소했으나 사건이 불송치나 무죄로 끝났더라도 쉽사리 무고로 단정해서는 안 되며, 고소 경위와 당사자 관계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다.

성범죄 피해자의 사후 행동을 정형화된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대처 양상을 두고 마땅히 이렇게 처신했어야 한다는 사후적이고 전형화된 기준으로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신고 내용 중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부분이 일부 있더라도 범죄 성립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황 과장에 불과하다면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