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를 위해 빚 일부를 대신 갚은 사람이 채권자를 상대로 갖는 저당권 부기등기 청구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소멸시효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위변제와 동시에 저당권을 법률상 취득하는 만큼, 이를 등기부에 반영해 달라는 요구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물권적 청구권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다)부는 2026년 10월 8일 B 회사가 알루미늄 공급업체를 상대로 낸 근저당권 일부 이전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6다204200).

사실관계

알루미늄 제품 판매업을 하던 A 씨는 1999년 10월 28일 물품 공급처에 자신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채권최고액 5억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A 씨는 며칠 뒤인 1999년 11월 3일 B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공급 차질로 2002년 4월경 거래관계가 종료되면서 근저당권 피담보채권이 확정됐다.

B 회사는 2002년 12월 27일 자신이 발행한 액면금 3억 원 상당의 약속어음을 당좌예금계좌로 결제했다. B 회사는 이 결제로 A 씨의 근저당권 피담보채무 중 3억 원을 대위변제했다며, 채권자인 공급처를 상대로 3억 원 근저당권 일부 이전 부기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냈다.

원심 판단

원심은 B 회사가 2002년 12월 27일 A 씨를 대신해 피담보채권 중 3억 원을 변제함으로써 근저당권 일부 이전 부기등기 청구권을 취득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 권리가 상행위로 발생한 상사채권에 해당한다고 보아 상법 제64조가 정한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지나 이미 소멸했다고 판단하고 B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민법 제481조와 제482조 제1항, 제483조 제1항에 따라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이 채무자를 위해 채권 일부를 대신 갚으면 변제한 금액 범위에서 채권자가 가진 저당권을 법률상 당연히 취득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대위변제자의 부기등기 청구권은 법률상 당연히 취득한 저당권에 근거하여 등기명의인을 상대로 실체관계와 불일치하는 등기 상태의 시정을 구하는 '물권적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B 회사가 피담보채권 중 3억 원을 대위변제했다면 이미 저당권 일부를 취득한 상태이며, 부기등기를 요구하는 권리는 채권이 아니어서 5년 시효로 사라질 수 없다는 취지다.

판결 의의

종전 대법원 판례는 대위변제자가 등기 없이도 저당권을 당연히 취득하고 부기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왔으나, 해당 청구권 자체에 소멸시효가 적용되는지를 두고는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려 왔다. 이번 판결은 대위변제자의 부기등기 청구권을 물권적 청구권으로 명확히 규정해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등기명의 정리를 요구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