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에서 고온 조리로 발생하는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돼 폐암에 걸린 조리사들에게 사용자인 지방자치단체가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인정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험 급여로 전보되지 않는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해 급식실 환기시설 미비와 보호구 미지급에 따른 지자체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명확히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3단독 정선희 판사는 학교 급식실 조리사 A 씨 등 9명이 대한민국과 광주광역시·전라남도·경상북도·부산광역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2025가단64626). 재판부는 피고 지자체들이 원고들에게 1인당 각 1,000만 원씩 총 9,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다만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사실관계

원고들은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27년간 조리 실무를 담당해 오다 2015년부터 2023년 사이 잇따라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튀김·볶음·구이 등 고온 조리 시 발생하는 초미세 분진 물질인 조리흄에 지속 노출된 점을 인정해 2022년부터 2024년에 걸쳐 이들의 폐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승인했다.

원고들은 산재 요양급여 등으로 보전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받고자 2025년 1월 22일 사용자인 지자체들과 국가를 상대로 각 1,00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지자체 측은 관련 법령을 준수했고 조리흄의 폐암 유발성이 확립되지 않아 손해를 예견하기 어려웠으며 근로자들의 마스크 미착용 과실도 참작해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지자체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지자체가 급식실 조리 업무에 따른 폐암 발병 위험을 방지할 적절한 환기설비를 갖추지 않았다고 봤다. 아울러 적합한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으며 안전보건교육 등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이 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상 학교 급식실을 전면 적용 대상으로 정하지 않은 점을 살폈다. 이어 조리흄을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나 유해물질에 포함하지 않고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에 급식실 환기 기준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위법한 입법부작위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상 영역에 머물던 학교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 피해를 두고 사용자인 공공기관의 민사상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법 판단이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6년 8월까지 전국 학교 급식 종사자의 폐암 산재 신청은 221건 중 180건(81.4%)이 승인됐다. 법원이 지자체 책임을 확인하면서 산재 승인을 받은 다른 급식 종사자들의 후속 손해배상 청구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