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오피스 직원의 보조배터리가 자연발화해 불이 났다. 법원은 입점기업이 스스로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독립된 공간을 배타적으로 쓰는 일반 임대차와 달리 일부 좌석만 이용하는 공유오피스에는 임차인의 증명책임을 가중하는 종전 판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단독은 화재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가 공유오피스 입점기업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2026가단30345)에서 2026년 10월 21일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사실관계
사건은 피고 기업 직원이 소지하던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나며 시작됐다. 피고 기업은 C사와 공유오피스 건물 일부 좌석을 이용하는 입점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조사 결과 화재는 기기 결함 등으로 일어난 자연발화로 확인됐다. 건물 화재 피해를 보상한 원고 보험사는 입점기업을 상대로 화재 손해 구상금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냈다.
원고 보험사는 종전 대법원 판례(2012다86895)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통상 임대차 계약에서 목적물이 화재로 소실됐을 때의 증명책임을 임차인에게 물어 왔다. 화재 발생에 자기 책임이 없거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임대인에게 훼손 책임을 진다는 법리다. 보험사는 이를 근거로 입점기업이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했으므로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공유오피스 입점계약이 일반 임대차 계약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가 C로부터 이 사건 건물 중 일부 좌석을 이용할 수 있는 입점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임대차와는 다른 점유 및 지배관계에 있다"며 대법원 2012다86895 판결에 따른 증명책임 분배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 책임 판단은 민법 제390조의 일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입점기업이 채무불이행 책임을 지려면 원고인 보험사가 피고의 구체적인 계약 위반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피고 기업이 계약상 과실로 주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아울러 민법 제756조 제1항에 따른 사용자 책임이나 민법 제758조에 따른 공작물 점유자·소유자 책임도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공유오피스나 공유공간처럼 특정 좌석과 공용시설을 공유하는 계약 형태에서 화재 사고의 입증 책임을 명확히 정리한 첫 하급심 판단 중 하나다. 기존에는 화재 원인이 불명확하거나 돌발적인 기기 결함이어도 임차인 지위에 있는 입점기업이 과실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막대한 배상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위험이 있었다.
보험사가 입점기업의 구체적인 과실이나 계약 위반을 직접 입증해야 하므로, 향후 공유오피스 구상금 청구 기준은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제1심 판결로, 판결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확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