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으로 넘겨받은 이월결손금이 일반 법인세 과세표준에서 모두 공제되지 않고 장부상 남아 있더라도, 미환류소득 계산 때 이미 한 번 전액 차감했다면 다음 사업연도에 또 차감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환류 여력이 충분한 기업이 합병 결손금을 지렛대 삼아 유보 소득에 매기는 법인세를 계속 피해 가는 길을 차단한 판결이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등을 운영하는 A 주식회사가 역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 전액을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다(2025구합53024). 역삼세무서가 2017~2020 사업연도 귀속 미환류소득 법인세 환급 세액 약 20억9,400만 원을 취소하고 다시 부과한 처분이 정당하다는 결론이다.
사실관계
A 사는 2021년 7월 B 회사를 적격합병하면서 B 사의 법인세 납세의무를 승계했다. B 사는 앞서 2011년 12월 C 회사를 합병하며 약 207억6,600만 원 규모의 이월결손금을 넘겨받은 상태였다.
문제는 일반 법인세와 미환류소득 법인세의 결손금 처리 기준이 갈리면서 발생했다. 법인세법 제45조 제2항에 따라 피합병법인의 결손금은 원칙적으로 승계받은 사업에서 발생한 소득 범위 안에서만 일반 과세표준에서 공제할 수 있다. B 사는 사업 구분경리 제한 탓에 207억여 원의 결손금을 일반 법인세 과세표준에서 공제하지 못하고 장부상 계속 남겨 두었다.
반면 투자·임금 인상·상생협력으로 환류하지 않고 유보한 소득에 과세하는 '미환류소득에 대한 법인세(구 조세특례제한법 제100조의32)'를 매길 때는 달랐다. B 사는 기준이 되는 기업소득을 계산하면서 이 결손금을 전액 차감해 세금을 줄였다. 이후 A 사는 일반 법인세 장부상 결손금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 2017~2020 사업연도 미환류소득 계산 때도 이 결손금을 매년 재차 차감해야 한다며 경정청구를 냈다.
역삼세무서는 당초 약 20억9,400만 원을 환급했다. 그러나 2022년 8월 "기업소득 계산 시 이미 차감한 승계 결손금은 다음 사업연도 미환류소득 산정 때 재차 차감할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 유권해석이 나오자 환급 결정을 번복하고 세금을 다시 고지했다. A 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이월결손금의 중복 차감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반 법인세 과세표준을 계산할 때 공제되지 않은 결손금이 남아 있더라도, 미환류소득 산정의 기초인 기업소득을 계산할 때 이미 전액 차감했다면 다음 사업연도 기업소득에서 재차 공제할 수는 없다는 법리다.
재판부는 중복 차감을 허용하면 사내유보금을 투자나 배당, 임금으로 돌릴 여력이 충분한 법인조차 결손금 공제기간이 끝날 때까지 과세를 피할 수 있게 돼 제도의 취지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과거 적격합병으로 거액의 결손금을 승계받고도 구분경리 요건 탓에 일반 법인세에서 공제하지 못하던 기업들의 세무 처리에 제동을 걸었다. 미환류소득을 산정할 때마다 결손금을 중복 반영해 세금을 줄여오던 실무 관행에 법원이 명확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리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다른 재판부는 지난 6월 과세표준에서 공제 가능한 결손금 잔액을 매년 미환류소득에서 전액 차감할 수 있다며 납세자 손을 들어줬다(2024구합92906). 1심 법원 내에서도 판결이 나뉘고 있어 최종 법리는 상급심인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