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분증에 속아 비대면 대출을 내준 금융사가 본인인증 절차를 형식적으로 거쳤더라도 실명확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채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확정됐다. 현직 교사가 사교육업체 일타강사에게 수능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넘기고 수천만 원을 받았더라도, 시장 가격에 부합하는 정당한 대가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도 함께 공개됐다.
법원도서관은 2026년 10월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각급법원 판결공보 요약본(제278호)'을 펴냈다. 민사·조세·형사 분야에서 거래 안전과 직결된 주요 하급심 판결 6건이 수록됐다.
사실관계
명의도용 피해자 A 씨는 제3자가 자신의 인적사항이 적힌 위조 주민등록증으로 알뜰폰을 개통하고 시중은행 비대면 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제3자는 위조 신분증으로 B 캐피탈회사에서 3,000만 원의 신용대출까지 실행했다. A 씨는 B 회사를 상대로 3,000만 원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B 회사는 대출 당시 휴대전화 본인인증, 공동인증서 전자서명, 신분증 진위확인, 1원 입금 문자입력 등 4가지 확인 조치를 정상적으로 거쳤으므로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계약 효력이 본인에게 귀속된다고 맞섰다.
재판부 판단
청주지방법원 민사부는 B 회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2024나57532). 대출 약정이 무효이므로 A 씨에게 채무가 없다는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금융사가 외형적 인증 절차를 거쳤더라도 실질적인 신분증 위조 식별이나 단기 개설 계좌 악용을 막지 못했다면 비대면 실명확인 의무를 온전히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자문서 효력을 명의자에게 귀속시킬 '정당한 이유'가 금융사에 없다고 본 것이다.
형사·민사 주요 하급심 동향
이번 공보에는 사교육 카르텔 수사로 기소된 사건의 첫 무죄 판결도 실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이재욱 판사)은 입시학원 수학강사와 교재개발실장, 현직 고교 교사 2명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25고단6389).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재판부는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항당 평균 약 24만 원, 일반교재용 문항당 약 12만~13만 원을 받아 1인당 최대 1억6,000여만 원을 수수한 행위를 사적 거래에 따른 정당한 권원으로 인정했다. 외주 제작업체 단가(15만~39만 원)나 일반 공모전 시세(10만~50만 원)와 견주어 과다하지 않고, 실제 채택된 문항에만 대가가 지급됐으며 해당 문항이 소속 학교 시험에 출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며, 형사처벌은 문제 해결의 최후수단"이라며 "공직자의 행위에 설령 부적절한 면이 있더라도 이를 모두 형사처벌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등법원 제38-3민사부는 분양 권유 문자나 전화를 받고 분양홍보관을 찾아 체결한 오피스텔 분양계약은 방문판매법상 전화권유판매에 해당하지 않아 14일 내 청약철회가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2025나208215).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12부(재판장 김정태 부장판사)는 정비업체가 조례 개정 청원 등 실질적인 법률사무를 대행하고 법무법인을 형식적으로 끼워 넣은 용역계약은 변호사법 제34조 제5항 위반으로 무효라며 210억 원 증액에 따른 용역비 청구를 기각했다(2024가합219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