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할 제품이 없어 공급이 끊길 때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핵심 치료재료를 정부가 ‘국가필수의료기기’로 지정해 직접 수급을 챙긴다. 아울러 의료기관 납품 실적이 없거나 의료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은 소규모 판매·임대업자는 지출보고서 작성과 보관 의무에서 즉시 벗어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러한 내용을 뼈대로 한 의료기기법 일부개정법률(법률 제22105호)을 2026년 10월 20일 공포했다. 2016년 도입된 국가필수의약품 제도처럼 의료기기 분야에도 공적 공급관리 체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수술실 공급 중단 막는 안전망 마련

그동안 의료기기는 사전에 생산이나 수입 중단을 예고하더라도 정부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아 업체의 선의나 임시 대응에 의존해 왔다. 2019년 소아 심장수술용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나 2025년 선천성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에 쓰는 인공확장형 금속 늑골 수급난처럼 중증 환자의 수술이 무기한 지연되는 일이 잇따랐던 이유다.

실제로 식약처에 접수된 의료기기 생산·수입 중단 예고는 2024년 16건에서 2025년 83건으로 1년 만에 5.2배로 늘었고, 2026년 8월까지 누적 166건 가운데 국내 대체품이 없는 품목만 21건에 달했다.

개정법은 보건의료상 필수적임에도 대체 가능한 제품이 없거나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 중단 시 중대한 위험을 낳을 수 있는 제품을 ‘국가필수의료기기’로 규정했다(제2조제5항). 복지부장관과 식약처장은 안정공급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과 국산화 지원, 생산·수입 확대를 위한 행정·재정·기술 지원을 할 수 있다(제43조의7).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식약처 산하에 의장 2명을 포함한 30명 이내의 ‘국가필수의료기기 안정공급 협의회’를 둔다(제43조의8). 식약처 차장과 복지부 고위공무원이 공동 의장을 맡고, 의료계·산업계·환자단체가 추천한 비공무원 위원이 과반수로 참여한다.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도 필수성 조사와 국내외 정보 수집, 협의회 지원 업무를 새로 부여했다(제42조·제43조).

병원 거래 없는 판매업자 규제 완화

의료기기 유통 현장의 불필요한 규제도 정비했다. 개정법은 해당 회계연도에 의료기관에 의료기기를 판매하거나 임대하지 않고 의료인 등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은 판매업자와 임대업자에게 지출보고서 작성·공개·보관 의무를 면제했다(제18조제5항).

종전에는 병원 거래나 불법 리베이트 소지가 전혀 없는 일반 소매업체까지 일률적으로 실적 없음을 적은 지출보고서를 만들어 보관해야 해 과도한 행정 부담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위험도 덜게 됐다.

시행 시기와 향후 일정

이번 개정법 가운데 판매·임대업자의 지출보고서 의무 면제 규정은 공포한 날인 2026년 10월 20일부터 곧바로 시행됐다. 해당 규정은 2026 회계연도에 작성하는 지출보고서부터 적용된다.

국가필수의료기기 지정 및 안정공급 협의회 운영 등 핵심 공급망 관리 조항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2027년 10월 2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식약처는 2027년 상반기까지 세부 지정 기준과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같은 해 하반기 제1차 국가필수의료기기 대상 품목을 우선 지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