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폐기물로 침출수가 새어 나오거나 불이 나는 등 심각한 피해 우려가 있을 때, 관할 행정청이 배출업체에 사전 조치명령 없이 곧바로 행정대집행을 한 뒤 비용을 물릴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법 개정 전에 위탁 매립한 폐기물이라도 계속 방치돼 있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실에 해당하므로 소급입법금지원칙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는 주물 제조업 등을 하는 22개 업체가 폐기물관리법 제49조 제2항 제3호 중 제48조에 관한 부분 등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2023헌바47 등). 비용 징수권을 보전하기 위해 법원에 재산조회나 가압류 신청을 할 수 있게 한 같은 조 제3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모두 각하했다.
사실관계
청구인들은 2011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제품 제조 과정에서 나온 사업장폐기물인 ‘화학점결 폐주물사’ 처리를 폐기물 처리업체인 유한회사 A 사에 위탁했다. A 사는 이 폐기물로 성토재를 만들어 전북 익산시 폐석산에 매립했으나, 침출수가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 중대한 환경오염 문제가 일어났다.
익산시장은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오염토와 폐기물 이적처리 및 복개공사 등 긴급 행정대집행을 벌였다. 침출수 누출 등으로 주민 건강이나 주변 환경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사전 명령 없이 대집행할 수 있도록 2019년 11월 26일 신설된 폐기물관리법 제49조 제2항 제3호가 근거가 됐다. 익산시장은 같은 해 7월 26일 청구인들에게 대집행 소요 비용을 납부하라고 명령했다.
청구인들은 전주지방법원에 비용납부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각하되자 2023년 2월부터 12월 사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개정법 시행 전에 매립된 폐기물에 대해 사전 조치명령 없이 대집행과 비용징수를 하는 것은 소급입법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판단
헌재는 소급입법금지원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폐기물이 이 사건 긴급조항 시행 전에 처리(매립)되었더라도 그 시행 이후에도 계속하여 방치된 상태에 있다면 이는 종료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사실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긴급조항이 헌법 제13조 제2항의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될 여지는 없다”고 판단했다.
신뢰보호원칙 위반 여부도 합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환경보전과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이라는 공익에 기초하여 공법상 의무를 부담지우는 법률의 경우 사회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법적 규율을 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구법에 대한 신뢰가치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대집행에 앞서 조치명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배출업자들의 기대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헌재는 “침출수가 누출되거나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관할 행정청이 조치명령을 내리고 이행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해를 발생시키고 폐기물의 처리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주민의 건강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보호하고 폐기물 처리의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방지하려는 공익은 사업장폐기물배출자의 신뢰이익보다 크다”고 판시했다. 가압류 등을 규정한 제49조 제3항은 당해 취소소송에 적용되지 않아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며 각하했다.
판결 의의
이번 결정은 2019년 11월 26일 신설된 폐기물관리법상 사전 조치명령 없는 긴급 행정대집행 조항에 대해 헌재가 소급입법금지원칙 및 신뢰보호원칙 위반 여부를 처음으로 판단한 사건이다. 헌재가 긴급 대집행 제도의 합헌성을 확인함에 따라, 위험 방치 폐기물에 대해 지자체가 선제 조치 후 배출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행정 집행 실무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