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센서 기반의 자동 조절 기능을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것처럼 홍보하거나, 부수적 기능에만 AI를 쓰고도 전면에 내세우는 ‘AI 워싱(AI Washing)’ 행위에 제동이 걸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품의 명칭이나 외형이 아닌 학습·추론·판단 기능의 실질을 기준으로 부당 광고 여부를 가려내겠다는 첫 지침을 내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년 10월 22일 「인공지능(AI) 관련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안)을 마련하고 오는 11월 11일까지 3주간 기업과 소비자,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다. 행정지침 형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향후 공정위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제재 수위를 결정할 때 핵심적인 법 해석 준거로 쓰인다.

단순 센서 제어는 AI 제외…‘주된 기능 연계성’ 요구

가이드라인 초안의 핵심은 AI 인정 기준의 구체화다. 단순히 정해진 임계값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자동 제어 기능이나 단순 센서 방식은 AI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인공지능기본법 제2조의 개념을 준용해 기계학습이나 생성형 모델처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추론하는 실질적 알고리즘이 돌아가야 AI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주된 기능 연계성 원칙’도 처음 도입됐다. AI 기술이 상품의 핵심 성능에 직접 연계된 때에만 주된 명칭으로 광고할 수 있다. 절전 모드나 필터 교체 알림처럼 부수적인 기능에만 AI가 쓰였다면 ‘AI 세탁기’가 아니라 ‘AI 절전 세탁기’처럼 적용 범위를 한정해 표시해야 한다.

‘AI 프리미엄’ 21% 노린 기만…16개 사례·체크리스트 수록

공정위가 지침 마련에 나선 배경에는 소비시장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2025년 11월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57.9%는 AI 적용 제품이라면 일반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지불 의향이 있는 추가 비용은 평균 21% 수준에 달했다. 기업들이 이 같은 소비자 기대를 악용해 기술 실질이 없는 제품에 프리미엄 가격을 매기는 사례가 잇따랐다.

초안에는 거짓·과장, 기만, 부당한 비교, 비방 등 표시광고법 제3조 제1항의 4대 유형별 판단 기준과 함께 16개 대표 사례가 담겼다. 단순 타이머 방식 전기온수매트를 ‘AI 딥러닝 실시간 수면 분석’으로 홍보하거나, 오픈형 챗봇 API를 활용하면서 객관적 검증 없이 ‘AI 변호사’로 표방하는 행위는 거짓·과장 광고로 분류됐다. 로봇청소기 광고에서 필수 연동 앱 설치 조건이나 전선 등 소형 물체 인식 불가라는 핵심 한계를 주 문구 근처에 명시하지 않는 행위는 기만 광고로 규정됐다.

기업 실무 체크리스트 의무화…객관적 실증 필요

기업들은 광고 집행 전 4단계 8개 항목의 ‘자가점검 체크리스트’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표시광고법 제5조에 따라 사업자는 광고 내용의 사실 여부를 실증해야 한다. 공정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공지능 제품·서비스 확인제도’ 확인서나 한국표준협회의 ‘AI+’ 인증 심사 자료 등을 유력한 실증 근거 예시로 제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AI 기술과 활용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해 심결례의 축적과 기술 변화를 반영하여 가이드라인을 주기적으로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11월 11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내부 검토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배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