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가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뒤,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본안 1호 사건이 헌재 대심판정 변론대에 올랐다. 대법원 상고심 사건 10건 중 7건에 달하는 심리불속행 기각 관행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는지를 두고 최고 사법기관 간 정면충돌이 본격화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6년 10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재동 대심판정에서 주식회사 녹십자가 대한민국 대법원을 상대로 낸 재판취소 헌법소원(2026헌마716)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청구인 녹십자 대리는 법무법인 율촌이, 이해관계인인 공정거래위원회 소송대리는 정부법무공단이 맡았다.

사실관계

분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17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발주된 자궁경부암 백신 입찰 3건에서 담합이 이뤄졌다며 녹십자에 시정명령과 함께 약 20억 3,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녹십자는 이에 불복해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10월 16일 청구를 기각했고(2023누60546), 대법원은 2026년 2월 12일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2025두35481).

문제는 형사재판의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동일한 백신 입찰을 다룬 공정거래법 위반 및 입찰방해 형사사건에서 2025년 12월 “입찰 구조상 실질적 경쟁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경쟁 제한성이 부정된다”며 녹십자 등에 무죄를 확정했다. 형사 무죄 판결과 정반대로 판단한 행정재판 원심을 대법원이 실질적 심리 없이 상고기각하자, 녹십자는 2026년 3월 16일 헌법소원을 냈다.

쟁점과 공방

핵심 쟁점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가 규정한 심리불속행 기각이 재판청구권과 재산권을 침해했는지다. 상고심법 제4조 제1항 제2호·제3호 및 제3항은 판례 위반 등 중대한 법령 위반이 있으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청구인 대리인 법무법인 율촌은 “담합 성립에 관해 대법원에서 이미 확정된 형사재판과 서울고법의 행정재판이 서로 상반된 결론을 도출한 극히 이례적인 사안”이라며 “심리불속행 제외 사유가 존재함에도 대법원이 실질적 심리를 하지 않은 채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율촌은 본안 심리를 거쳐 헌법상 재판청구권 보장의 명확한 법리가 정립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피청구인인 대법원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앞서 재판소원 도입 당시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가 되어 재판 지연과 반복을 부르고 국민이 ‘소송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입법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가 필요하며 국민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가 답변서 제출을 요청했으나 대법원은 응하지 않았다. 법원이 소송 당사자에 맞서 서면을 내면 재판기관으로서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소원 제도와 파장

이번 사건은 2026년 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3월 12일 시행된 개정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라 제기됐다. 법원의 확정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한 뒤 4월 27일까지 접수된 525건 가운데 265건이 지정재판부 사전심사에서 각하됐으나, 헌재는 4월 28일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 회부 1호’로 결정했다. 재판소원 누적 청구는 10월 19일 기준 2,472건에 달한다.

현재 대법원의 민사·가사·행정 상고심 사건 중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은 약 70~71% 수준이다. 헌재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을 취소할 경우 해당 사건은 미확정 상태로 돌아가 대법원이 다시 심리해야 한다. 이유 기재 없이 상고를 기각해 온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관행 전반에 헌재가 어떤 사법적 통제 기준을 제시할지가 이번 심판의 핵심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