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게 개설된 증권 계좌나 은행 통장에 수백만 원의 잔고가 찍혀 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손해 보상 명목으로 돈을 찾아 쓰려 하기 쉽지만, 이를 함부로 인출했다가는 사기 피해금을 가로챈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등에 탐지돼 출금이 막힌 계좌 속 잔고는 보이스피싱이나 대포통장 범죄 조직이 다른 피해자로부터 가로챈 사기 피해금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해당 자금은 계좌 명의인의 소유가 아니라 원래 송금인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다.

임의 인출 시 횡령죄·부당이득 반환 책임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금이 송금된 계좌의 명의인이 돈을 임의로 인출한 사건에서 일관되게 횡령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계좌 명의인과 송금인 사이에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된 돈은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할 성격이므로 계좌 명의인은 피해자를 위해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2017도17494).

계좌에 들어온 돈을 본인이 취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민법 제741조에 따른 법률상 원인 없는 부당이득에도 해당해 전액 반환 의무를 진다. 아울러 사기 범행 가담 여부까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다.

계좌 즉시 해지 불가와 범인 확인 한계

명의도용 계좌를 확인한 뒤 금융사 지점을 방문하더라도 통장을 즉시 폐쇄하지 못할 수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4조와 제5조에 따라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돼 지급정지 조치가 내려진 계좌는 통상 채권소멸 및 피해환급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해지가 일시 유예된다.

금융사 창구에서 명의를 도용한 범인의 인적사항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금융사는 수사권이 없어 타인의 신상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사 전산으로는 비대면 계좌 개설 일시와 신청 매체, 접속 IP 주소, 인증에 쓰인 기기 정보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지점 방문 자료 확보 후 경찰 신고해야

명의도용 계좌를 발견한 소비자는 계좌 잔고에 손을 대지 말고 신분증을 지참해 해당 금융사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 영업점에서 명의도용 사고 등록을 접수하고, 비대면 개설 상세 내역서와 접속 로그 자료를 발급받는 것이 우선이다.

확보한 금융사 증빙 자료를 첨부해 관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명의도용 피해 고소장을 접수해야 수사기관이 영장을 집행해 실제 도용범을 추적할 수 있다. 피해 신고 접수증을 남겨둬야 추후 대포통장 유통 혐의 등 형사적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추가 금융 피해를 막기 위한 사전 예방 조치도 필수다. 금융결제원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어카운트인포)의 '비대면 계좌개설 안심차단'과 '여신거래 안심차단'을 설정하고,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엠세이퍼(M-Safer)로 본인 명의의 알뜰폰 및 이동전화 신규 개통을 전면 차단해야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