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바닷속 갱도가 무너져 수몰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84년 만에 수습된 유해의 신원 확인 작업이 첫 대조에서 무산됐다. 정부가 보관 중인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남은 희생자 35명의 유족을 추적하고 방계 혈족 시료를 확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행정안전부와 외교부는 2026년 10월 23일, 2025년 8월과 2026년 2월 조세이 탄광에서 발굴된 유해 5점을 한일 양국 전문기관이 DNA 감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감정 결과 성인 남성 2명의 유해로 판명됐으나 양국 정부가 보유한 유족 DNA와 가족관계는 성립하지 않았다. 2025년 8월 수습된 유해 4점은 동일한 남성 1명의 것이었고, 2026년 2월 수습된 유해 1점은 또 다른 남성 1명의 유골로 확인됐다.

이번 감정은 2026년 1월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5월부터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일본 측 전문 감정기관이 공동으로 착수했다. 정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8조 제2호와 제23조에 근거해 조세이 탄광 한국인 희생자 총 136명 가운데 101명의 유족을 확인했다. 이어 98명의 유족 검체 분석을 마친 상태에서 대조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 수습된 남성 2명의 유전자는 한국 정부가 확보한 98명의 유족 데이터는 물론 일본 정부가 보유한 자국인 희생자 유족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조세이 탄광 참사는 1942년 2월 3일 해안에서 약 1km 떨어진 해저 갱도 천장이 무너지며 바닷물이 들이쳐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당시 무리한 채굴 탓에 안전 한도인 47m보다 얕은 해저면 37m 지점까지 파고들어가다 사고가 났으며, 전체 작업 인력 중 조선인 비율이 75%에 달해 '조선탄광'으로 불렸다. 80년 넘게 방치되던 유해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갱도를 찾아내 잠수사를 투입하면서 2025년 8월과 2026년 2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신원 특정이 불발되면서 유가족과 현장 발굴단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노우에 요코 새기는 모임 대표는 "유가족들에게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최악의 결과"라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10월 23일 정례회견에서 "향후 새로운 유골 등이 발견될 경우 관계 부처 및 한국 정부와 어떤 협력이 가능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소통할 것"이라며 긴밀한 협력을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수습된 유해가 한국인 희생자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한국인 희생자 136명 중 아직 유족을 찾지 못한 35명이 남아 있고, 이미 DNA를 채취한 98명 중에서도 직계존비속이 없어 방계 친족 시료만 확보된 경우가 있어 추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도 조세이 탄광 희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유족 DNA를 추가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본 측과도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2026년 2월 작업 도중 대만인 잠수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해저 수중 탐사가 잠정 중단된 만큼 민간 단체는 육상 매장지 조사를 추진하는 등 추가 유해 발굴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