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받으려다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와 계좌 비밀번호를 타인에게 넘기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악용돼 본인 명의의 모든 금융기관 계좌가 동결될 수 있다. 대출 사기에 속은 피해자이더라도 범죄수익 이체에 계좌가 쓰였다면 형사 피의자로 입건된다. 초기부터 객관적인 자료로 기망당한 경위를 소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온라인 법률상담 플랫폼에는 무직 상태에서 3,500만 원까지 사업자 작업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은행에서 토큰형 OTP를 발급받고 계좌 비밀번호와 함께 퀵서비스로 넘겼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직후 해당 계좌에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의심되는 1억4,000만 원이 입금됐고, 90만 원가량만 남긴 채 제3자에게 빠져나갔다. 이후 질문자 명의의 모든 계좌가 막히면서 월세와 통신요금 납부, 교통카드 이용 등 일상적인 금융생활이 전면 중단됐다.
이처럼 본인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4조에 따라 해당 사기이용계좌의 입출금과 이체가 즉시 지급정지된다. 동시에 같은 법 제13조의2에 따라 명의인은 전자금융거래제한대상자로 지정돼 전 금융권 계좌의 인터넷·모바일 뱅킹과 자동화기기(ATM) 인출 등 비대면 거래가 일괄 차단된다.
더 큰 문제는 사기 피해자가 곧바로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와 제49조 제4항 제2호는 대가를 약속하고 OTP나 비밀번호 등 접근매체를 대여·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범행에 이용될 가능성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도왔다면 형법 제347조 및 제32조에 따른 사기방조죄 혐의도 받는다.
대법원은 2019년 6월 27일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고 접근매체를 넘긴 행위도 경제적 이익에 대응하는 대가성 대여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2017도16946). 반면 대출 원리금 상환용으로 필요하다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를 넘긴 사건들에서는 대가 관계에 관한 인식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잇달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2020도16468, 2022도5903).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대표변호사는 온라인 답변에서 "작업대출이 편법이라는 설명을 듣고 OTP와 비밀번호를 넘긴 점은 상당히 불리하다"며 "반면 대출을 받지 못했고 상대방이 연락을 끊은 사정은 기망당한 경위를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대륜 경제범죄전담팀 역시 단순 대출 절차로 속아 인증번호를 넘긴 경우 불기소 처분이 나온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업대출 등 편법성을 인지하고 OTP나 비밀번호를 통째로 건넨 사안은 대가성 위반과 미필적 고의 혐의를 강하게 의심받는다고 지적했다.
계좌가 막혔다면 즉시 경찰과 거래 은행 양쪽에 신고하고 이의제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로톡-네이버 지식iN 상담변호사인 안민석 변호사는 "피해자이면서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대화내역, 전화번호, 퀵 배송 정보, 계좌 거래내역과 신분증을 가지고 경찰서에 출석해 전 과정을 시간순으로 진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때 상대방과 연락하거나 대화기록을 지우지 말고, 은행에서 사실과 다른 설명으로 계좌 정지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거래 은행에는 접근매체 사고신고를 접수해 OTP 폐기와 비밀번호 변경을 요청하고, 금융사기 담당 부서에서 계좌별 제한 사유와 이의제기 절차를 서면으로 확인해야 한다. 다만 은행에 단순 이의신청을 하는 것만으로는 지급정지와 전자금융거래제한이 곧바로 풀리지 않는다.
전 계좌의 거래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려면 통상 1~3개월이 걸리는 경찰·검찰 수사에서 혐의없음 불송치 결정이나 무혐의·기소유예 처분 통지서를 받아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반대로 유죄가 확정되면 형 확정 후 3~5년간 전자금융거래제한이 이어질 수 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금융질서문란행위자로 등록돼 최장 12년간 대출과 신용카드 개설 등에서 불이익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