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장기간 주야간 교대근무와 유해한 작업환경이 겹쳐 뇌출혈로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한 근로시간 기준은 내부 업무처리지침일 뿐 법원을 구속하지 않으며, 이전 직장에서 한 교대근무까지 모두 합산해 과로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26년 10월 27일 숨진 근로자 A 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불승인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4두40400).
사실관계
A 씨는 두 곳의 사업장을 거치며 약 12년 동안 주야간 교대제 업무를 수행했다. 서울의 한 호텔 시설팀에서 보일러 운전 관리와 시설 수리 업무를 맡았던 A 씨는 2019년 4월 야간근무 중 지하 기계실 내 사무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비외상성 뇌실질내출혈로 숨졌다.
A 씨는 지하 기계실에서 소음과 분진, 유해물질에 노출된 채 육체적 부담이 큰 수리 업무를 했고 호텔 직원 및 고객의 항의에도 대응해 왔다.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은 52시간 미만이었으나 사망 직전 1주일 동안 업무시간은 이전 12주 평균보다 30%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건강검진상 정상이던 A 씨의 혈압 수치는 교대근무가 누적되면서 고혈압 1단계까지 상승했다.
배우자는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원심 판단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원심은 A 씨의 발병 전 1주일 업무시간이 증가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발병 전 12주간 주 평균 업무시간이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한 만성 과로 기준인 52시간에 미달해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나 단기 과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획표대로 교대근무가 이뤄져 휴식이 주어졌고 사망 원인은 개인의 건강 상태에서 비롯됐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먼저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근무하다 질병에 걸린 경우 복수의 사용자 아래에서 경험한 모든 업무를 포함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고용노동부 고시의 법적 성격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 별표 3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은 예시적 규정이며, 그 위임에 따른 고용노동부 고시 제2017-117호는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있는 규범이라고 볼 수 없고,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내부적인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적용 기준을 정해주는 행정규칙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과거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했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재해자의 기초질환을 업무관련성 판단의 고려사항으로 보지 않도록 종전의 건강상태 항목을 삭제한 고시 개정 경위와 목적도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A 씨가 두 사업장에 걸쳐 약 12년간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고 사망 전 근무도 불규칙했던 점에 주목했다. 여기에 야간근무와 고혈압 및 뇌혈관질환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결과, 혈압 수치가 정상 범위에서 고혈압 1단계까지 상승한 경과 등을 종합하면 장기간 교대근무가 뇌출혈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발병 전 1주일 동안 업무시간이 늘어난 데다 지하 기계실의 소음·분진·유해물질 노출, 육체적 부담이 큰 수리 업무, 직원과 고객의 항의 대응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A 씨가 평소 정상적으로 근무하며 건강관리를 해 온 점 등을 고려하면 발병 전 12주간 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에 미달한다거나 신장·체중 등을 이유로 업무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교대근무 등이 고혈압과 겹쳐 뇌출혈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고혈압 자체가 교대근무에 기인했을 가능성도 크므로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고용노동부 고시의 주 52시간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산재를 불승인해 온 실무에 제동을 걸었다. 향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릴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 취지에 따라 A 씨의 장기 교대근무와 복합적 유해환경이 질환에 미친 영향을 다시 심리하게 된다. 경비나 시설관리 등 교대제와 유해환경에 노출된 근로자는 단일 사업장의 근로시간뿐 아니라 이전 직장 경력과 실제 근무 환경 전반이 산재 인정의 핵심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