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가 채무자의 채권을 가압류·압류한 뒤에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합의해제하더라도 채권자에게 채무 소멸을 주장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채권 압류 뒤 계약을 임의로 해제해 강제집행을 무력화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채권자 보호를 강화한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026년 9월 29일 채권자 C 씨가 제3채무자인 B 회사를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3다275578). 원고는 백상수 변호사(변호사시험 8회)가 대리했다.
사실관계
채무자 A 회사는 피고 B 회사에 경주 바이오가스 발전 사업을 8억5,000만 원에 넘기는 양수계약을 맺었다. A 회사에 채권을 갖고 있던 C 씨는 양도대금 채권 가운데 3억5,000만 원을 가압류했다. 이어 집행권원을 확보해 본압류로 이전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다.
C 씨가 B 회사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 소송을 내자, B 회사는 가압류 이후 A 회사와 맺은 사업 양수계약을 합의해제했으므로 양도대금 채무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맞섰다.
1심·원심 판단
1심과 2심은 모두 피고 B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채권 소멸만을 목적으로 계약을 합의해제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3채무자는 가압류 뒤에도 합의해제로 피압류채권이 소멸했다는 사유를 들어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대법원 종전 판례(2001다17930)를 따른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5년간 유지돼 온 종전 판례를 폐기하며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채권에 대한 압류 또는 가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후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채권의 발생원인인 계약을 합의해제 또는 합의해지하였다면 원칙적으로 제3채무자는 피압류채권이 소멸하였다는 사유를 들어 압류채권자나 가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합의해제는 압류명령의 효력 아래 있는 당사자가 그 효력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새로운 합의로서 기회주의적 동기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압류채권자가 집행 절차에 신뢰를 두고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무위로 돌려 강제집행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짚었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 사유도 제시했다. 채무불이행에 따른 법정해제나 약정해제 요건을 갖췄으나 형식만 합의해제로 거친 경우, 계속적 계약에서 발생하는 장래 채권인 경우, 합의해제의 대항력을 부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대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이러한 예외 사유를 증명할 책임은 제3채무자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에 따라 채권 가압류 이후 거래 당사자들이 임의로 계약을 해제해 채권을 소멸시키는 방식의 집행 방해 행위는 차단된다. 대법원은 원심이 종전 법리에 따라 심리하지 않은 예외 사유가 존재하는지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