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상대로 진행한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 사건에서 다시 패소했다. 영국 법원에서 원 판정을 일부 취소받아 재심리에 들어갔으나, 중재판정부가 정부의 위법 개입과 투자자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원심과 같은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법무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분쟁 환송중재 판정부가 2026년 9월 30일 오후 7시경(한국 시각) 한국 정부에 배상원금 미화 약 4,849만 428달러 및 이에 대한 연 5% 복리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선고했다고 10월 1일 밝혔다. 누적 이자와 소송비용 등을 합산하고 상계 처리를 마친 총 정부 부담액은 약 1억 1,300만 달러(약 1,530억~1,537억 원)에 달한다.
사실관계
분쟁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은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압력 속에 지분 11%대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합병안이 가결됐다.
엘리엇은 2018년 6월 한-미 FTA 제11.5조가 규정한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7억 7,000만 달러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2023년 6월 중재판정부는 정부 책임을 일부 인정해 배상원금 4,849만 달러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영국 법원 취소소송 경과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국가 행위로 볼 수 없고 중재판정부 관할권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중재지인 영국 상사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냈다. 2024년 8월 1심 각하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법원을 거쳐 파기환송됐다. 2026년 2월 환송된 영국 1심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원 판정을 일부 취소했다. 다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위법 개입과 엘리엇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및 손해액 판단을 위해 사건을 중재판정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 판단
원 중재판정부와 같은 3인의 중재인으로 구성된 환송중재 판정부는 재심리 끝에 원 판정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판정부는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당시 정부 부처의 불법 개입이 없었다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 행위와 엘리엇이 입은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정부는 환송중재 과정에서 국내 소액주주 국가배상 청구 기각 판결(2023나2000796)과 이재용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판결(2025도2805) 등을 방어 논리로 제출했으나 중재판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향후 절차와 파장
판정이 그대로 집행되면 국고 지출액은 1,530억 원을 넘게 된다. 엘리엇 측은 정부의 불복 소송으로 소송비용 부담이 늘고 매일 1만 달러 이상의 지연이자가 가산되고 있다며 판정을 즉각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관계부처, 정부 대리로펌 및 외부 전문가 등과 함께 판정문을 면밀하게 분석해 필요한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판정문 검토를 마친 뒤 영국 법원에 재차 판정 취소소송을 낼지, 배상금 정산 절차에 착수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