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의 취소 판결로 다시 열린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에서 한국 정부가 다시 패소했다. 국제중재판정부가 원중재와 같은 배상원금을 명령함에 따라, 누적된 지연이자와 소송비용을 포함한 정부 지급 규모는 1,530억 원대로 늘어났다.

법무부는 2026년 9월 30일 19시경(한국 시각)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엘리엇 ISDS 사건 환송중재 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환송중재 판정부는 원중재를 맡았던 중재인 3명으로 구성됐다.

사실관계

분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했던 엘리엇은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며 반대했으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합병이 성사됐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11장에 근거해 7억 7,000만 달러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1심·원심 판단

PCA 중재판정부는 2023년 6월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원금 약 4,849만 달러와 연 복리 5%의 지연이자 지급을 판정했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2023년 7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냈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정부 조치에 해당하지 않아 관할권이 없다는 취지였다. 영국 법원은 2026년 2월 국민연금공단 자체를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판정 일부를 취소하고 사건을 중재판정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 판단

환송중재 판정부는 국민연금공단 자체를 국가기관으로 보지 않더라도, 2015년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기관이 합병 찬성에 개입한 불법 행위와 엘리엇이 입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원금 미화 약 4,849만 달러와 연 복리 5%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배상 원리금과 상호 소송비용 상계액을 합친 정부의 총지급 부담은 약 1억 1,300만 달러(선고일 환율 기준 약 1,530억 원)에 이른다.

판결 의의

원중재 판정에 불복해 영국 법원 소송을 거치는 사이 연 복리 5%의 지연이자가 붙으면서 국고 부담이 커졌다. 엘리엇 측은 지연이자만 매일 1만 달러 이상 늘어난다며 즉각적인 판정 수용을 요구했고, 시민사회에서는 불법합병 개입 책임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라고 촉구했다. 법무부는 판정문 분석을 거쳐 영국 법원 재취소 청구나 배상금 집행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