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과 거래처 도산으로 벼랑 끝에 몰린 중소기업들이 법인파산 신청 시점을 두고 결단을 내리지 못해 피해를 키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자력 회복을 기대하며 무작정 버티다 법인 자산이 소진되면,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 문제로 대표이사가 형사고소에 직면하거나 개인 파산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도산 전문 변호사들은 법인의 남은 자산이 연체 이자나 무의미한 운영비로 사라지기 전에 신속히 도산 절차를 밟는 것이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자산 소진 전 파산해야 우선변제 가능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05조와 제306조에 따르면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급불능 상태이거나 부채 총액이 자산 총액을 넘어서는 채무초과 상태일 때 법원은 파산을 선고할 수 있다. 이때 법인에 남은 재산은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현금화해 채권자들에게 배당한다.
근로자의 최종 임금과 퇴직금, 재해보상금 및 국세·지방세는 같은 법 제473조에 따라 일반 파산채권보다 우선 변제되는 '재단채권'으로 분류된다. 법인 자산이 남아 있을 때 파산 절차를 밟아야 근로자의 미지급 임금과 조세, 4대 보험료 등 우선변제채무를 조금이라도 더 정산할 수 있다.
정유진 변호사는 "거래처의 말만 믿고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법인의 남은 자산이 연체 이자나 운영비로 모두 소모될 위험이 있다"며 "자산이 남아있을 때 파산 절차를 진행해야 미지급 임금이나 퇴직금, 조세 및 4대 보험료 등 우선변제채무를 조금이라도 더 정산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방치하면 대표자 형사처벌·개인보증 직격탄
파산 절차를 미루고 사업체를 방치할 경우 대표자가 지게 되는 법적 위험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근로기준법 제36조와 제109조는 근로자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임금과 퇴직금을 청산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면 대표이사는 회사 재산 관리·처분 권한을 상실하고 그 권한은 파산관재인에게 넘어간다. 이에 따라 선고 이후 발생하는 미지급 임금·퇴직금에 대한 대표자의 형사책임은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파산선고 전에 자산이 바닥나 체불이 굳어지면 대표자는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법인 채무에 대표자 개인 연대보증이 걸려 있는 경우 법인 자산이 소진된 뒤 쏟아지는 강제집행과 가압류를 고스란히 대표 개인이 떠안게 된다.
신용훈 변호사는 "현재 매달 적자를 겨우 면하고 있더라도 기존 부채 원리금, 직원 임금과 퇴직금, 세금, 거래처 대금을 계속 지급하기 어렵다면 파산을 미루는 것이 오히려 채무를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파산을 고려한다면 특정 거래처에만 먼저 돈을 갚는 편파변제나 회사 재산을 대표자·가족 명의로 이전하는 행위는 부인권 대상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파산 역대 최대… 골든타임 지켜야
최근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법인파산 신청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2021년 955건에서 2023년 1,657건, 2025년 2,282건으로 급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026년 상반기에도 1,299건이 접수돼 전년 동기 대비 17.7% 증가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기준 중소기업의 56.9%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상태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회생 절차로 채무를 조정받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지만, 신규 거래처 확보나 유동성 회복 전망이 불확실하다면 조기에 파산을 선택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법원의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근로자는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국가가 사업주 대신 지급하는 도산대지급금으로 체불 임금과 퇴직금을 우선 구제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