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연루돼 금융계좌가 지급정지된 명의인이 범죄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민사소송을 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별법에 정해진 이의제기 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해자에게 소송을 거는 방식은 피해 구제를 지연시키고 부당한 증명책임을 떠넘긴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단독 재판부는 계좌 명의인 A 씨가 보이스피싱 피해자 B 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채무부존재확인 소송(2025가단66813)에서 소를 각하했다.
사실관계
B 씨는 자신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A 씨의 은행계좌를 대상으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지급정지와 피해구제 절차를 신청했다. 금융회사는 A 씨 명의 계좌에 지급정지 조치를 내리고 예금채권 소멸 절차에 들어갔다.
A 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관여한 사실이 없으므로 B 씨에게 반환해야 할 부당이득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A 씨가 제기한 소송이 권리 보호를 위한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 아니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의인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3조 제1항에 따라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점과 정당한 사유를 소명해 이미 소멸된 채권의 환급을 청구할 수 있다"며 "별도의 구제수단이 마련돼 있는 이상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것은 현존하는 불안과 위험을 제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피해자에게 증명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도 짚었다. 재판부는 "명의인은 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금융회사에 이의제기를 해 비가담 사실을 직접 소명할 수 있다"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승소 판결은 피해자가 채무발생 원인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그칠 수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적극적인 증명책임까지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8조에 따라 소송이 법원에 계속되면 채권소멸절차가 종료되도록 규정한 점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소송 계속 자체를 절차 종료 사유로 정한 것일 뿐,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계좌 지급정지 조치가 당연히 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식 이의제기 절차 없이 피해자 상대 소송으로 제한 해제를 시도하도록 허용하면 피해자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돕고 명의인에게 소명책임을 부과하려는 법률 취지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