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던 후발 납품업체가 거래를 끊고 제품을 자체 제작해 납품했더라도, 이를 곧바로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무단 사용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기술이나 제품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영역에 속하는지와 업계의 공정한 거래 관행을 종합해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3부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2024다226825). 선고일은 2026년 10월 8일이다.

사실관계

선발 외국회사인 원고는 국내 납품업체인 피고에게 변압기를 공급해 왔다. 이후 피고는 원고를 배제한 채 독자적인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시장에 직접 변압기를 제조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원고는 피고가 자신의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든 성과를 무단으로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제조·납품 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법원 판단

피고의 제조·납품 행위가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현행 파목)이 정한 성과물 도용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 조항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대법원은 보호 대상인 '성과 등'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명성이나 경제적 가치, 고객흡인력, 시장 비중과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해당 성과물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했는지를 가리는 기준도 구체화했다. 대법원은 당사자 사이의 경쟁관계 및 장래의 경쟁 가능성, 해당 산업 분야의 상거래 관행 내용과 그 공정성, 대체 가능성, 거래처나 수요자의 혼동 가능성 등을 종합해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피고의 납품 행위 중 일부를 두고 성과물 침해 요건과 공정한 경쟁질서 위배 여부를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원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특허나 영업비밀 침해로 포섭하기 어려운 제품 제조·공급 분쟁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일반조항을 적용할 때 지켜야 할 엄격한 한계를 재확인했다. 거래 관계에 있던 업체가 독자 개발이나 대체 생산에 나섰을 때, 무조건적인 성과물 도용을 인정하기보다 시장 공공영역 여부와 대체 가능성 등을 실질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사건이 원심법원으로 돌아감에 따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설시한 법리에 맞춰 피고의 변압기 제조 기술이 공공영역에 해당하는지, 업계 관행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섰는지 등을 다시 심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