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일행의 소지품으로 오인해 타인의 가방을 들고나온 행위는 절도죄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군검찰이 혐의가 인정된다며 내린 기소유예 처분도 취소됐다.
헌법재판소는 육군 소속 군인 A 씨가 충청전라지역보통검찰부(11검찰대) 군검사를 상대로 낸 기소유예처분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2025헌마1326). 청구인 대리는 법무법인 프로스 박노산 변호사가 맡았다.
사실관계
A 씨는 2025년 5월 5일 오후 4시경부터 친구 2명과 양주 3병 이상을 마신 뒤 이튿날 새벽 0시 30분경 부산의 한 개방형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피해자는 69만8,000원 상당의 의류와 전자담배, 가방 등을 테이블 밑에 두고 자리를 비웠다. A 씨 일행 중 한 명인 B 씨는 해당 테이블에서 다른 손님들과 대화한 뒤 가방을 집어 A 씨 옆 의자에 올려두었다.
A 씨는 같은 날 오전 2시 29분경 이 가방을 메고 일행과 술집을 나와 인근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귀가 직후인 오전 3시 15분경 A 씨는 술집에서 대화했던 여성에게 SNS 메시지로 "누님 가방 놔두고 갔어요. 어떻게 지금 드려"라고 보냈고,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자 "도대체 누구 거야"라고 적었다. 이후 가방은 친구 집에 그대로 보관됐고, 수사가 시작되자 내용물 훼손 없이 수사기관에 제출됐다.
충청전라지역보통검찰부는 2025년 9월 18일 A 씨에게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반면 가방을 먼저 집어 올렸던 일행 B 씨에게는 서울 관할 경찰서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나 재판에 넘기지 않는 불기소처분이다.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한 A 씨는 2025년 10월 1일 헌법소원을 냈다.
재판부 판단
헌재는 A 씨에게 불법영득의사나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에게 취득이 허용된 물건으로 오인하고 가져온 경우에는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어 고의가 조각된다"는 대법원 판례(83도1762)를 들었다.
헌재는 "A 씨 등이 당시 상당한 만취 상태였고, 착오로 가방을 가져왔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술집을 나온 직후 SNS로 가방 주인을 수소문하려 한 정황이 객관적으로 확인된다"고 짚었다. 아울러 물품을 처분하지 않고 원상태 그대로 제출한 점, 공범으로 입건된 일행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도 근거로 삼았다.
헌재는 "절취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범죄 성립을 전제로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며 "이는 중대한 수사미진과 증거판단의 잘못으로 A 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