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방송사인 한국방송공사(KBS)가 외주제작사의 수억 원대 출연료 편취를 방치하고 한국전력공사에 수신료 징수비용을 과다 지급하는 등 경영 전반에서 심각한 부실을 드러냈다. 정부의 직접적인 예산 통제를 받지 않는 제도적 공백 속에서 누적된 방만 경영과 감시 부실이 외부 감사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2026년 10월 7일 공개한 '한국방송공사 기관정기감사' 및 'KBS 사장의 감사 독립성 침해 관련 공익감사청구' 감사보고서에서 경영 전반의 위법·부당 사항 총 17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시정 1건(지적금액 11억8,900만 원)을 비롯해 주의 5건, 통보 11건의 처분을 내렸다.

출연료 4억5,000만 원 부풀려 편취…깜깜이 계약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외주제작사 관리 부실로 공사 예산 낭비가 이어졌다. 2021년부터 2025년 10월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외주제작 드라마 54편 전체는 출연료, 원고료, 스태프 비용 등 항목별 산출 근거와 금액조차 명시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2년 내 방영된 드라마 10편을 점검한 결과, 6편에서 외주사가 계약상 총 제작비의 11.5%에 이르는 67억 원을 과소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사 범죄 혐의도 포착됐다. 외주제작 A업체는 주연배우의 실제 출연료가 5억5,000만 원임에도 10억 원으로 부풀린 허위 세금계산서 등을 제출해 선급금에서 4억5,000만 원을 가로챘다. 감사원은 KBS에 사기 혐의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아울러 국세청에는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로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사실을 알렸다. KBS는 감사 진행 중이던 2026년 6월 9일 외주 관계자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절차 무시 예산 낭비와 11억 원대 수신료 징수비 과지급

사전 통제 절차를 건너뛰어 손실을 자초한 사례도 적발됐다. 편성제작회의의 심의·의결 없이 추진되다 제작이 취소된 드라마 3편에서 6억1,5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공적 재원인 수신료 정산 업무도 허점을 드러냈다. KBS는 한국전력공사의 수신료 징수비용 정산을 소홀히 다뤄 15개월 동안 한전에 11억8,800만 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과다 지급된 금액 전액을 한전에서 돌려받도록 시정을 요구했다.

상위직급 57% 달해…감사 독립성 침해로 사장 주의

인력 구조 왜곡과 방만한 복리후생도 심각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2025년 기준 전체 직원 3,735명 가운데 57.4%인 2,144명이 상위직급(G2 이상)인 역피라미드 구조였다. 1인당 복리후생비는 399만 원으로 다른 공공기관 평균의 1.93배였다. 2017년 감사원이 폐지나 개선을 요구한 14개 복리후생 항목 중 9개를 그대로 유지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153억2,400만 원을 집행했고, 직무 구분 없이 지원된 통신비만 107억5,600만 원에 달했다. 주차장과 사내 카페 등 20개 시설을 사내 공제회에 수의계약으로 임대해 77억8,400만 원의 부대사업 이익을 올리도록 방치한 사실도 지적됐다.

경영진의 위법한 내부 인사 전횡도 도마에 올랐다. 전임 사장의 무단 전보로 불거진 '1직위 2부서장' 파행을 8개월간 방치하고, 법원 결정으로 복귀한 감사의 정당한 감사실 직원 전보 요청을 9차례 연속 거부한 사장에게는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감사원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과 자체 감사직무규정이 보장한 감사기구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KBS는 지분 100%를 정부가 출자한 국가기간방송사지만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기획재정부의 직접적인 예산 편성 지침이나 경영평가를 받지 않는다. 당기순손실이 2022년 118억 원에서 2024년 735억 원으로 6배 이상 급증한 상황에서 자체 통제 실패가 부실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이번 감사 결과를 전면 수용해 향후 방송국 재허가 심사 시 공식 참고자료로 반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