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내 시설 공사를 맡긴 협력업체 근로자가 작업 중 숨졌더라도 원청이 시공을 총괄·관리하지 않은 발주자라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다. 돌발 조작 사고까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원청이 단순 시설 공사를 발주했을 때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 9월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관할 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내사하던 A 정유사와 소속 임직원 사건을 최근 혐의없음으로 내사종결했다. 원청인 A 정유사 측은 법무법인 지평 노동그룹(이시원·김서율·강우승 변호사, 유훈종 전문위원)이 대리했다.

사실관계

사건은 2025년 9월경 A 정유사의 물류센터에서 일어났다. A 정유사는 자사 물류센터 내 소방설비 개선공사를 위해 소방설비 전문 공사업체인 B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B사 소속 근로자가 소화전 방수구 전면에서 소화전을 임의로 조작하던 중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숨졌다.

관할 노동청은 하청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A 정유사와 경영책임자가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의 안전·보건조치의무와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및 제5조에 따른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핵심 쟁점과 노동청 판단

수사의 핵심은 A 정유사를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 볼 것인지, 의무가 면제되는 '건설공사발주자'로 볼 것인지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는 건설공사를 도급하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를 '건설공사발주자'로 규정하고 도급인의 직접적인 안전조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한다.

노동청은 A 정유사가 소방시설 공사에 전문성이나 시공 능력이 없고 기본적인 안전관리만 수행했을 뿐 구체적인 시공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도급인이 아닌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해 수급인 근로자 안전조치의무를 직접 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사고 발생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도 쟁점이었다. 대리인단은 업무지시가 없었는데도 재해자가 휴게시간 중 임의조작이 금지된 소화전을 독자 작동시키다 발생한 돌발 사고라는 점을 소명했다. 노동청 역시 발생 자체를 미리 내다보기 어려웠던 사고로 보아 법 위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실무적 파장

이번 처분은 대법원이 제시해 온 도급인 판단 법리를 노동청이 행정 수사 단계에서 적용해 정식 입건 없이 종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대법원은 2024년 11월 14일 선고한 인천항만공사 사건(2023도14674)과 2026년 6월 25일 선고한 변압기 폭발 사망사고(2024도5902) 등에서 계약 형식이 아니라 원청의 전문성, 시공 능력, 유해·위험요인의 실질적 지배·관리 권한 유무를 엄격히 따져 도급인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판시했다.

기업 실무에서는 사업장 내 개보수나 설비 공사를 외부 전문업체에 맡길 때 원청의 전문 시공 자격 유무와 현장 지휘·감독 개입 범위를 명확히 정리해 두는 작업이 형사 리스크 관리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근로자의 무단·돌발 행동으로 발생한 사고를 두고 사업주의 예견가능성 결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체계 역시 중요해졌다. 노동청이 혐의없음 내사종결을 결정하면서 이번 사건은 검찰 송치나 기소 없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