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단순 센서나 타이머만 장착한 제품에 '인공지능(AI)' 문구를 붙여 판매하면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제재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제 기술을 쓰지 않거나 부수 기능에 불과한데도 AI 제품인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드는 이른바 'AI 워싱(AI Washing)'을 걸러낼 구체적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10월 22일부터 11월 11일까지 「인공지능(AI) 관련 표시·광고 가이드라인」 초안을 두고 기업과 소비자, 전문가 등 제3자의 의견을 청취한다. 이번 지침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연성규범이지만,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집행 과정에서 부당광고 여부를 가리는 공정위의 공식 판단 잣대로 쓰인다.

단순 센서 달고 "AI 주치의" 표방하면 거짓·과장

가이드라인은 표시광고법 제3조 제1항이 금지하는 거짓·과장, 기만, 부당한 비교, 비방의 4가지 유형별로 구체적 판단 기준과 개선 전·후 가상 광고 사례 16건을 제시했다. AI 기술 여부는 표시광고법에 별도 규정이 없어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제2조를 준용해, 탑재 형태나 학습 시점이 아닌 '학습·추론·판단' 기능의 실질을 기준으로 삼는다.

초안에 담긴 가상 사례를 보면 단순 수동 타이머 방식 전기온수매트에 "AI 딥러닝 기술로 수면 상태 실시간 분석"이라고 쓰거나, 단순 무게 센서만 갖춘 고양이 화장실을 "수의사 AI 주치의"로 광고하는 행위는 거짓·과장 광고에 해당한다. 로봇청소기에 "AI 사물인식 칩셋 탑재"라고 내세우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연동 등 필수 작동 조건을 본문에서 빠뜨리는 행위는 기만적 광고로 분류된다. 객관적 실증 근거 없이 전문 자격을 표방한 'AI 변호사' 광고 역시 부당한 광고로 꼽혔다.

"AI 적용 제품에 평균 21% 더 낸다"…워싱 피해 차단

공정위가 지침 제정에 나선 것은 AI 기술 마케팅이 급증하면서 이를 악용한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2025년 11월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9%가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면 일반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이들은 평균 약 21%의 추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법무·마케팅 부서는 제품의 일부 부수 기능에만 AI를 적용했음에도 제품 전체가 AI로 작동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외부 공개 API를 가져다 쓰면서 자체 개발 기술인 것처럼 표시하거나, 필수 작동 조건과 성능 한계를 은폐하는 마케팅도 제재 대상이다. 공정위는 사업자가 표시광고법 제5조에 따른 실증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8개 항목으로 구성된 자가점검 체크리스트도 함께 제공했다.

11월 11일까지 의견 접수 뒤 최종 확정

이번 가이드라인은 2025년 12월 10일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AI 등을 활용한 시장 질서 교란 허위·과장광고 대응 방안」의 후속 조치다. 공정위는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2026년 8월 전문가 토론회와 9월 사업자 간담회를 거쳐 이번 초안을 마련했다.

의견 제출을 원하는 이해관계자는 11월 11일까지 우편이나 이메일로 공정위에 의견을 낼 수 있다. 공정위는 접수된 의견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배포하고, 향후 축적되는 심결례와 기술 변화를 반영해 내용을 주기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