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남긴 빚을 피하려 선순위 상속인이 무턱대고 상속포기만 선택했다가는 외삼촌이나 사촌 형제 등 먼 친족에게 채무가 연쇄 승계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후순위 친족으로 이어지는 빚의 대물림을 끊어내려면 선순위 상속인이 상속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녀와 형제자매가 없는 조카가 배우자와 이혼 소송을 치르던 중 사채 등 다액의 채무를 남기고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판상 이혼청구권은 부부 일신전속권이어서 소송 도중 당사자 일방이 사망하면 소송은 그대로 종료되고, 부부관계는 이혼이 아닌 사망으로 해소된다(대법원 94므246). 생존 배우자는 민법 제1003조에 따른 법률상 상속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문제는 배우자가 채무를 떠안지 않으려 상속을 포기했을 때 일어난다. 배우자가 상속을 포기하면 민법 제1000조의 상속 순위에 따라 2순위 직계존속인 망인의 모친이 단독 상속인이 된다. 모친마저 빚을 면하려 상속포기를 신고하면 상속권은 다음 순위인 직계존속 외조부에게 넘어간다. 외조부마저 포기하면 3순위 형제자매가 없어 4순위인 4촌 이내 방계혈족에게 차례로 승계된다. 모친의 남동생인 외삼촌과 사촌 형제까지 고스란히 채무 상속 대상자가 되어 줄줄이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친족들의 연쇄 피해를 차단하는 방법은 선순위 상속인의 한정승인이다. 민법 제1028조에 따른 한정승인은 상속으로 취득할 재산 한도 내에서만 피상속인의 채무를 갚는 조건부 승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송명호 변호사는 네이버 지식iN 법률 상담에서 "후순위 친척들에게 채무가 대물림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모친께서 한정승인을 선택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사채나 알 수 없는 채무가 있더라도 한정승인을 해두면 상속받은 적극재산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지므로 고유재산은 안전하게 보호된다"고 설명했다.

한정승인을 거치더라도 채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책임 범위만 상속재산 한도로 줄어든다. 한정승인 뒤 사채업자 등 채권자가 대여금 반환 소송을 걸어오더라도 법원에 한정승인 심판문 정본을 첨부한 답변서를 제출하면 된다.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변제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내 고유재산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다. 채무가 상속재산을 크게 초과하고 채권 관계가 복잡한 때에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99조에 따라 회생법원에 상속재산파산을 신청해 공평하게 청산하는 절차를 병행할 수 있다.

상속 승인과 포기는 민법 제1019조에 따라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피상속인의 최후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망인의 채무를 전액 떠안게 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등 상속 비송 사건은 2014년 3만7,002건에서 2018년 4만2,579건, 2020년 4만4,927건, 2022년 5만1,626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