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반드시 신청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속인이 적지 않다. 물려받을 재산이 채무보다 명백하게 많다면 법원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신청할 필요가 없다. 아무런 절차를 밟지 않고 빚을 갚은 뒤 남은 재산을 승계하는 단순승인을 선택하면 된다.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인이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포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같은 법 제1026조 제2호에 따라 이 3개월의 숙려기간 동안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으면 법률상 단순승인한 것으로 간주돼 고인의 권리와 의무를 무제한으로 승계한다.
재산과 채무 규모에 따른 선택 기준
상속재산이 채무보다 많다는 점이 확실하다면 법정 숙려기간을 그대로 넘겨 단순승인(민법 제1025조) 상태로 두면 된다. 이후 물려받은 재산으로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하고 남은 재산을 상속인들이 나누어 가지면 절차가 마무리된다.
문제는 채무가 재산보다 많거나 부모의 빚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다. 이때는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관할 가정법원에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접수해야 한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상속재산 한도 안에서만 고인의 채무와 유증을 갚는 조건부 승인(민법 제1028조)이며, 상속포기는 상속인의 지위 자체를 완전히 내려놓는 절차(민법 제1041조)다.
3개월 넘겼다면 ‘특별한정승인’ 검토
사망 당시 빚의 존재를 알지 못해 3개월의 숙려기간을 넘겼더라도 구제 수단은 열려 있다. 민법 제1019조 제3항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3개월 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한 경우, 그 초과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난 시점에 금융기관이나 사채 채권자로부터 원리금 독촉 최고서나 법원 소장을 처음 송달받았다면, 그 통지를 받아 채무초과 사실을 알게 된 날이 기산점이 된다. 대법원은 중대한 과실을 두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채무초과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현저히 게을리해 알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했다(2010다7904). 상속인은 채무초과 사실을 사전에 알 수 없었던 정당한 사유를 증명해야 한다.
재산 임의 처분 주의와 법적 절차
상속 절차를 밟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대목은 상속재산의 임의 처분이다.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따르면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에는 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간 안이라도 법정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 고인의 예금을 인출해 생활비로 쓰거나 고인 명의 부동산·차량을 처분하면 빚을 전부 떠안을 수 있다.
상속채무 승계 부담을 덜기 위한 법률 정비도 이어졌다. 법무부는 2022년 12월 13일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직접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민법 제1019조 제4항을 신설해 시행 중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2023년 3월 23일 자녀 전원이 상속을 포기하면 후순위인 손자녀가 아니라 남은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판례를 변경(2020그42)해 채무가 대를 건너뛰어 손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혼선을 줄였다.
부모가 사망했을 때는 주민센터나 정부24의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이용해 금융거래와 부동산, 세금 체납 내역을 선제적으로 조회해야 한다. 재산보다 채무가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사망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이라는 제척기간을 엄격히 지켜 법원에 서류를 제출해야 고유재산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