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서류 송달 과정에서 피해자의 새 주소가 가해자에게 노출돼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법원이 직권으로 개인정보를 가릴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피해자가 제도를 모르거나 경황이 없어 신청하지 못하더라도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하면 선제적으로 신변 보호에 나설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인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22059)을 2026년 10월 23일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전은수·김남국·임미애·문진석·이해식·양부남·김영배·황희·강득구·김영진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현행 민사소송법 제163조 제2항은 소송관계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을 때 주소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법원이 열람이나 복사를 제한할 수 있게 규정한다. 다만 이는 반드시 해당 소송관계인의 신청이 있어야만 가능한 신청주의를 따르고 있다. 가사소송법 제12조에 따라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가사 재판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 왔다.
이 때문에 이혼이나 위자료 소송 과정에서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피해자의 주민등록초본이나 거주지 주소가 소장과 답변서 송달을 거쳐 가해 배우자에게 넘어가는 사례가 잇따랐다. 거주지를 옮기고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소송 서류 탓에 주소가 드러나 살해당한 경기 광주 아내 살인사건이나 송파 장모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인 입법 배경으로 꼽힌다.
개정안은 소송기록이나 심리 과정에서 드러난 사정에 비추어 위해 우려가 인정되면, 당사자 신청이 없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주소 등 개인정보 기재 부분을 보호조치할 수 있도록 안 제163조 제2항을 손질했다. 재판부가 기록 검토나 변론 과정에서 보복이나 폭력 징후를 발견하면 피해자 요청 없이도 주소지를 가릴 권한과 책무를 갖게 된다.
채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가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함께 묶어 '가정폭력 피해자보호 3법'으로 병행 발의했다. 채 의원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만 숨어 지내며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보복 범죄와 2차 피해를 막고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실무에서는 소송대리인의 조력을 받기 어려운 나홀로 소송 피해자의 신변 안전망이 한층 두터워질 전망이다. 소송대리인 역시 의뢰인의 보호신청이 지연된 상황에서 법원에 직권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접수된 개정안은 소관 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거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