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부탁으로 서면 차용증 없이 지인이 지정한 다른 사람의 계좌로 돈을 보냈더라도 메신저로 빚을 인정받은 기록이 있다면 법적으로 대여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약속한 돈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상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어 민사와 형사 절차를 명확히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법률 상담 창구에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친구 본인이 아닌 제3자 명의 계좌로 직접 돈을 보낸 뒤 변제를 받지 못해 대응 방안을 묻는 사례가 접수됐다. 질문자는 차용증이나 친구 계좌로 송금한 내역이 없는 상태에서 메신저로 원금을 언급하자 상대방이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은 채 “미안하다, 내가 책임지고 주겠다”는 사과만 반복하고 있다며 사기 고소와 민사 청구 가능성을 질의했다.

제3자 송금 내역과 메신저 정황으로 대여 사실 입증

법조계에서는 본인 계좌에서 채무자에게 직접 송금한 금융 기록이 없더라도 대여금 반환 청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민법 제598조가 규정하는 금전소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금전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반환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불요식 계약이어서 반드시 서면 차용증을 써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김준환 법률사무소 필승 대표변호사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제3자에게 대신 송금한 것이라면 그 송금 내역도 대여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며 “카카오톡에서 원금 반환을 요구하자 상대방이 미안하다거나 내가 책임지고 주겠다고 답했다면 채무를 인정한 정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송금 내역 단독으로는 증여나 다른 거래로 오인될 수 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과 변제 약속 정황이 결합하면 법원에서 대여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단순 채무불이행과 사기죄는 별개

반면 형사상 사기죄 고소는 요건이 전혀 다르다.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돈을 빌릴 당시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피해자를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대법원도 돈을 빌릴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차후 사정 변경으로 갚지 못하더라도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해 왔다(2012도14516). 차용 당시 차용 목적을 거짓으로 둘러댔거나 이미 변제 능력이 전무한 상태였다는 구체적 기망행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고소장을 내면 수사기관에서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지급명령 신청 등 실무 대응 요령

전문가들은 채무자에게 억지로 금액을 시인하게 만들려 말씨름을 이어가기보다 이미 확보된 제3자 송금 영수증과 메신저 대화 원본부터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책임지고 갚겠다”는 의사표시는 민법상 채무 승인에 해당해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사유로도 쓰일 수 있다.

채권자는 확보한 증거 자료를 소명자료로 첨부해 민사소송법 제462조에 따른 지급명령을 관할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지급명령 정본이 채무자에게 송달된 뒤 2주 안에 이의신청이 없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겨 채무자 재산에 곧바로 강제집행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정식 민사소송으로 전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