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나 지인에게 수천만 원에서 억대 돈을 빌려줬다가 상대방이 퇴사하거나 잠적한 뒤 무자력을 주장해 발을 동동 구르는 채권자가 적지 않다.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해 차용증조차 작성하지 않은 경우 민사소송 승소 가능성과 함께 형사고소로 채권을 회수하는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실제 직장 동료에게 3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대출금 포함 약 1억4,000여만 원을 빌려줬으나 상대가 퇴사 후 돈이 없다고 버티는 사례처럼, 법조계에서는 민사 청구와 형사고소를 병행하는 방안이 주요 회수 전략으로 꼽힌다. 형사 절차에서 피의자 신분이 된 채무자가 구속이나 실형을 피하기 위해 합의금을 마련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다.
차용증 없어도 민사 가능…가압류가 우선
민법 제598조가 정한 소비대차는 반드시 서면 차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금융거래 이체 내역과 채무자가 변제 의사를 밝히거나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기록만 확보돼 있다면 대여 사실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 법원에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써버리면 판결문이 휴짓조각이 된다는 점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네이버 지식iN 법률상담을 맡은 송명호 변호사는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리거나 은닉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본안 소송과 함께 예금 채권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신속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무자가 주소지를 옮긴 상태라면 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사실조회나 주민등록초본 발급으로 인적사항을 특정해야 한다. 이후 판결을 받아 민사집행법에 따른 재산명시신청과 재산조회 절차를 밟아야 숨긴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다.
형사고소 통한 압박과 '편취의 고의' 입증
민사 집행의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무상 자주 병행하는 카드가 형법 제347조 사기죄 고소다. 송명호 변호사는 "처음부터 사채 상환 등 과도한 채무로 인해 변제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음에도 거짓말로 돈을 빌려간 경우라면 형사상 사기죄 성립이 가능하다"며 "수사기관의 압박을 통해 심리적 부담을 주어 합의금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전략도 실질적인 채권 회수에 큰 도움이 된다"고 짚었다.
특히 채권자에게 신규 대출까지 받도록 유도해 자금을 빌려 갔거나, 당초 말했던 사용처와 달리 기존 사채 돌려막기나 도박 등에 쓴 사실이 드러나면 혐의 입증이 수월해진다. 대법원(95도707) 역시 돈을 빌릴 당시 밝힌 용도와 실제 사용처가 다르고, 진실한 용도를 알았더라면 빌려주지 않았을 관계가 인정되면 용도 기망에 따른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단순 채무불이행과 사기의 경계…신중한 접근 필요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채무불이행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나중에 사정이 악화해 갚지 못하더라도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고 형사상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법리를 펴고 있다(2012도14516).
대법원 형사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도 채무자가 수억 원대 부채 상태에서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사건(2021도7942)에서 채권자가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고 변제 능력에 거짓이 없었다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채무불이행 행위를 사기죄로 처벌할 때에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고소장 단계에서 채무자가 돈을 빌릴 당시 변제 능력이 전혀 없었음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나 대여금 유치 과정에서의 기망 정황을 탄탄하게 갖추지 못하면 수사기관에서 각하 또는 불송치 결정이 내려질 위험이 크다. 나아가 사기 성립 여부에 결정적인 중요 사실을 허위로 기재해 고소하면 형법 제156조의 무고죄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정밀한 법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