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에 모르는 돈이 입금된 날 배우자에게 30만 원을 이체했다가 부부 두 사람의 통장 모두 비대면 거래가 정지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흘러간 것으로 추적되면 자금을 넘겨받은 가족 계좌까지 사기이용계좌로 묶이는 연쇄 동결 구조 때문이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제4호는 피해자의 자금이 송금·이체된 계좌뿐만 아니라 해당 계좌에서 자금이 이전된 계좌까지 사기이용계좌로 규정한다. 같은 법 제4조와 제13조의2에 따라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되면 금융회사는 즉시 계좌 전부를 지급정지한다. 인터넷·스마트폰뱅킹·자동화기기(ATM) 등 비대면 전자금융거래도 제한해야 한다.
사기범들은 이 제도를 악용해 계좌번호가 공개된 자영업자나 일반인의 통장으로 피해금을 무단 송금한다. 그 뒤 허위 신고로 계좌를 묶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이른바 '통장협박'을 벌이고 있다. 피해금이 입금된 줄 모르고 당일 배우자 등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면 전산망이 자금 흐름을 추적해 수취 계좌까지 연쇄 동결한다.
2026년 10월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3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사기이용계좌 등으로 지정돼 지급정지된 계좌는 총 14만2,512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이의제기를 거쳐 지급정지가 해제된 건수는 2만3,698건에 그쳤다. 5대 은행의 이의제기 접수 건수는 2023년 8,880건, 2024년 7,835건에서 2025년 1만3,450건으로 늘었고, 2026년 상반기에만 1만3,301건이 몰렸다.
억울하게 계좌가 묶였다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7조에 따라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일부터 2개월 이내에 금융회사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해당 계좌가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이나 재화·용역의 대가 등 정당한 권원으로 취득했다는 점, 피해금 편취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네이버 지식iN 자문을 맡은 송명호 변호사는 "실무에서는 신고한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내서 그 사실을 은행에 제출하는 방식이 많이 쓰이고, 입금자와 아무 거래 관계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라며 "배우자분께 보낸 30만 원이 평소의 생활비였다는 점을 이전 송금 내역으로 소명하면 배우자분 계좌의 제한을 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송을 제기할 때는 명의인이 직접 정당한 권원을 입증해야 한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26년 8월 20일 사기피해금이 순차 이체돼 지급정지된 계좌 명의인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2025가단110837). 재판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근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는 통상과 달리 계좌 명의인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7조 제1항 각 호의 정당한 권원 취득 등 이의제기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좌가 동결되면 기존에 등록된 통신요금이나 건강보험료 자동이체가 금융회사와 이체 방식에 따라 빠져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은행에 처리 여부를 확인하고 대체 납부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배우자가 법인 대표인 경우 법인 통장은 별개의 법인격 명의여서 개인 명의 제한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지만, 금융회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어 거래 은행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기범이 연락해 오더라도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돈을 돌려주면 자금세탁 방조로 오인받거나 환급 절차가 꼬일 수 있어 직접 반환해서는 안 된다.
금융감독원은 2026년 5월 4일 무고한 명의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표준화 절차를 5월 중 은행권에 우선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의제기 접수 시 원칙적으로 5영업일 이내(보완 시 1차 5영업일, 추가 3영업일 연장)에 심사 결과를 통보하고, 생계 목적 거래 내역이 명확하면 피해금만 묶는 '일부 지급정지'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2026년 7월 평균 기준(공휴일 포함) 은행별 이의제기 심사 소요 기간은 하나은행 3.5일, 우리은행 5.1일, NH농협은행 9.5일, 신한은행 16.1일, KB국민은행 18.6일로 편차가 컸다. 박대출 의원은 "영세 자영업자 등을 노린 신종 '통장묶기' 사기가 급증하는데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금감원 가이드라인 이행률은 매우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