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10년이 지나 당시 대화 캡처본이나 녹음 파일을 근거로 가해자를 고소하려 해도 법적 처벌이나 손해배상을 끌어낼 수 없다. 법이 정한 형사 공소시효와 민사 소멸시효가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풀겠다며 온라인에 가해자 신상을 폭로하면 오히려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스마트폰에 보관한 대화 캡처본이나 녹음 파일 자체는 유효기간이 없어 10년이 지나도 당시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 가치가 유지된다. 그러나 수사기관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는 범죄 발생일로부터 기간이 정해져 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에 따라 장기 5년 미만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는 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일반 학교폭력 사안에서 주로 문제 되는 협박죄(형법 제283조)와 모욕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공소시효는 모두 5년이며,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7년이다. 사건 발생 뒤 10년이 흘렀다면 이미 시효가 만료돼 경찰에 고소장을 내더라도 수사기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한다.
형사 처벌 대신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 역시 시효의 벽에 막힌다. 민법 제766조 제1항과 제2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지나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미성년자가 성폭력이나 성추행 등 성적 침해를 당한 때에는 성년이 될 때까지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한 특례(민법 제766조 제3항)가 있다. 그러나 일반 폭행·협박·따돌림 같은 학교폭력에는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아 10년이 지나면 소송을 내도 기각된다.
사법적 구제 수단이 막힌 피해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해자의 실명과 과거 행적을 올리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시효가 끝난 가해자의 과거 행위와 달리, 피해자가 올린 폭로 글은 즉시 수사 대상이 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형사 피의자로 입건되고 민사 위자료까지 물어줄 위험이 크다.
대법원은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위반 사건에서 "적시 사실이 진실이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이 부인된다"고 판시해 왔다(2003도6036, 2020도12750). 실제로 광주지법은 2025년 1월 9일 운동선수의 과거 학교폭력을 폭로해 기소된 사건에서 공공의 이익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2024고단2974). 반면 사적 보복이나 가해 의도가 주된 것으로 판단되면 유죄가 인정된다. 서울동부지법은 2021년 4월 9일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의 학교폭력 의혹을 온라인에 올려 약식기소(벌금 150만 원)된 폭로자 A 씨의 정식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되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처벌하는 법 조항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2월 25일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에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2017헌바156). 당시 다수의견은 "온라인 매체 발달로 명예훼손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력이 커져 한번 훼손된 명예는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재판관 4인은 정당한 공론 형성을 위축시킨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시민사회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미성년 시절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사적 폭로로 내몰리지 않도록 민사 소멸시효 기산점을 성년 이후로 늦추거나 공소시효를 연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국민동의청원과 함께 이를 비범죄화하는 형법 개정안들이 계류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