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계약이 끝났더라도 임대인이 남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임차인이 건물을 비우지 않아도 불법점유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약 종료 후 본래 목적대로 영업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않았다면 월세 상당의 부당이득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대구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김태현 부장판사, 주심 최항선 고법판사)는 2026년 7월 16일 임차인 A 씨가 임대인 B 측을 상대로 낸 본소와 B 측이 A 씨를 상대로 낸 토지인도 반소 항소심에서 B 측의 계약 종료 후 부당이득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2025나11276, 2025나11277). 재판부는 A 씨가 B 측에서 보증금 잔액 7,498만3,474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토지 4,089㎡와 지상 건물을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사실관계
A 씨는 카페 영업을 목적으로 B 측과 토지 4,089㎡ 및 지상 건물에 관해 보증금 1억 원,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월 차임 495만 원에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이후 A 씨가 차임을 미납하자 B 측은 계약 해지를 통고했고, 이 의사표시가 2024년 3월 30일 도달해 계약이 종료됐다.
계약 종료일을 기준으로 보증금 1억 원에서 연체차임 2,235만4,838원과 지연손해금 266만1,688원을 뺀 나머지 보증금은 7,498만3,474원이었다. B 측은 계약이 끝난 뒤에도 A 씨가 건물을 계속 점유했다며, 월 495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과 불법점유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소를 냈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먼저 B 측의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 제741조가 정한 부당이득에서 이득은 실질적인 이익을 뜻한다.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 건물을 점유했더라도 원래 계약 목적대로 사용하거나 수익해 실질적 이득을 얻지 않았다면 반환 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B 측은 A 씨가 건물을 차량 튜닝 용도 등으로 썼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불법점유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역시 기각했다. 재판부는 "임차인의 건물명도의무가 지체에 빠지는 등의 사유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임차인의 건물에 대한 점유는 불법점유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임차인으로서는 이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도 없다"고 판시했다.
연체차임을 공제하고도 돌려줘야 할 보증금 7,498만3,474원이 남아 있었고, B 측이 이를 반환하거나 현실적인 이행 제공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A 씨의 건물 명도의무가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아 민법 제536조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잃지 않았으므로 불법점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와 별도로 B 측이 A 씨에게 1,589만2,709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 반환과 건물 인도가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98다6497 등)의 법리를 다시 확인했다. 대법원은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 의무를 이행하거나 적법한 이행 제공을 해 임차인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지 않는 한, 임차인의 점유는 불법행위(민법 제750조)나 채무불이행(민법 제390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판단해 왔다.
임대인이 계약 해지 후 퇴거하지 않는 임차인에게 월세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해지 통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연체차임을 뺀 나머지 보증금을 실제로 돌려주거나 공탁하는 등 이행 제공을 먼저 마쳐야 한다. 임차인이 영업을 중단한 채 건물을 점유만 하고 있다면, 임대인이 임차인의 실질적 사용 이익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부당이득반환 청구도 인정받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