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재산을 빼돌려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채권자가 민사소송으로 배상받을 수 있는 돈은 못 받은 빚 전액이 아니다. 실제로 회수할 수 있었던 금액에 한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산 은닉 행위가 없었을 때 강제집행 절차에서 확실하게 배당받을 수 있었던 액수를 채권자가 입증해야 그 범위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다.

대구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김태현 고법판사, 주심 최항선 고법판사)는 2026년 6월 25일 대여금 채권자 A 씨가 채무자 B 씨와 그의 가족 C·D·E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판결(2024가단121613)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피고 B 씨와 C 씨는 공동하여 원고에게 2,649만6,361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025나10777). 재판부는 B 씨와 C 씨를 상대로 한 나머지 청구와 D·E 씨를 상대로 한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사실관계

A 씨는 B 씨와 그 배우자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으려고 대여금 반환 소송을 냈다. 이어 2019년 11월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 강제집행 권원을 확보했다. 그러자 B 씨는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C 씨에 관한 허위 채무를 채권자목록에 올렸다. 그 뒤 C 씨 명의 계좌로 변제 명목의 자금을 송금해 빼돌렸다.

B 씨와 배우자는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가족 명의 계좌 등으로 자금을 송금해 은닉한 혐의(형법 제327조 강제집행면탈)로 기소돼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A 씨는 이들의 강제집행면탈 행위로 대여금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B 씨와 명의를 빌려주고 가담한 가족 C·D·E 씨를 상대로 민법 제750조 및 제760조에 따른 공동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 판단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의 강제집행면탈 행위가 없었더라면 원고가 관련 민사판결에 따라 강제집행 절차에서 대여금 채권을 확실히 회수할 수 있었던 액수가 입증됐다고 봤다. 이에 그 범위 안에서 B 씨와 C 씨의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다만 A 씨가 청구한 미회수 대여금 채권 전체를 손해액으로 보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B 씨의 은닉 계좌 자금 가운데 B 씨가 우선 변제해야 했던 채무를 먼저 뺐다. 그리고 남은 금액에서 A 씨가 일반채권자로서 안분 배당받을 수 있었던 회수 가능액만 산출했다. 여기에 피고 측이 형사사건에서 공탁해 A 씨가 이미 수령한 형사공탁금을 공제한 뒤 최종 손해배상 원금을 2,649만6,361원으로 확정했다. 이 금액에는 2024년 6월 1일부터 선고일인 2026년 6월 25일까지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에 따른 연 12%의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채무자의 재산 은닉으로 제3자의 채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례(2017다239311) 법리를 따랐다. 대법원은 불법행위 당시 채무자의 책임재산에서 조세·근로채권 등 우선변제권이 있는 채권을 먼저 뺀다. 이어 남은 금액을 일반채권자들이 각 채권액 비율대로 안분비례해 배당받을 수 있었던 금액만 불법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인정한다. 제3자의 불법행위 책임은 단순 관여를 넘어 채권자 존재와 침해 사실을 알면서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부정한 수단을 썼을 때 성립한다(2005다25021).

실무에서는 채무자가 강제집행면탈죄로 유죄 확정을 받았더라도 민사소송에서 미회수 채권 전액이 자동으로 인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법무법인 오현은 판례 분석 자료에서 “채무자의 위법행위가 인정되는 문제와 실제 배상받을 수 있는 손해액을 산정하는 문제는 별개”라며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렸더라도 그 행위가 없었을 때 채권자가 채무자의 책임재산에서 실제로 회수할 수 있었던 금액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며, 법원은 우선변제채권 공제, 일반채권자 간 안분비례 계산, 기수령한 형사공탁금 공제를 거쳐 최종 배상액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