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정 신청자가 제출한 본국 형사판결문이 현지 대한민국 대사관의 진위 확인을 거치지 못했더라도 법원이 다른 증거를 종합해 진정한 공문서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본국 정권의 박해를 피해 입국한 난민신청자가 현지 공관에서 본국 사법기관 문서의 인증을 받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한 판단이다. 공관 확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핵심 증거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26년 10월 27일 이집트 국적 A 씨가 관할 출입국·외국인관서를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5두35271).

사실관계

이집트 국적 A 씨는 2018년 7월경 대한민국에 입국해 난민인정을 신청했다. 관할 출입국·외국인관서는 난민법상 요건인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난민불인정결정을 내렸다.

A 씨는 본국 형사재판에서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의 이집트 판결문 2건을 법원에 제출하며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는 주이집트 대한민국 대사관이 현지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해당 판결문들의 진정성립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됐다.

원심 판단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A 씨가 제출한 이집트 판결문들의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A 씨가 난민인정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출입국·외국인관서의 난민불인정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행정소송법 제8조 제2항에 따라 준용되는 민사소송법 제356조 제1항과 제3항은 외국의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한 것으로 인정한 문서는 작성방식과 취지에 비추어 진정한 공문서로 추정한다고 정한다.

대법원은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 요건을 심사할 때 "해당 공문서를 작성한 외국에 소재하는 대한민국 공관의 인증이나 확인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유심증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므로 다른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종전 대법원 판례(2013두14269, 2016다205373)가 세운 기준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재판부는 A 씨가 낸 이집트 판결문들이 판결문으로서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고, 다른 사건에서 진정성립이 인정된 이집트 판결문들과 형식이 유사하다고 짚었다. 국제인권 비정부기구(NGO)인 '정의위원회(Committee for Justice)'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저스티스 워치 아카이브(Justice Watch Archive)'에서도 해당 재판 내용이 확인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비추어 이집트 사법기관 공무원이 직무상 작성한 문서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A 씨 진술의 일부 불일치를 두고도 기억력의 한계나 통역 과정의 오류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이 판결문들의 형식과 내용, A 씨 진술 및 다른 증거와의 부합 여부를 추가로 심리해 진정성립을 가렸어야 한다며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로 본국 사법기관의 협조나 재외공관의 확인을 받기 어려운 난민소송에서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심리하는 구체적 기준이 제시됐다.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고등법원은 국제인권기구 아카이브 기록과 유사 사건 판결문 형식, 원고 진술의 신빙성 등을 보완 심리해 난민 인정 여부를 다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