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린 뒤 잠적한 채무자가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더라도 민사상 빚을 갚아야 할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는 공정증서를 작성할 수 없고 형사재판의 배상명령도 10건 중 7건 이상 각하된다. 이 때문에 별도의 민사소송으로 판결문을 받아두어야 출소 후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복수의 지인에게 자금을 빌린 뒤 잠적해 형사고소와 수배가 진행 중인 사장을 상대로 돈을 돌려받을 방법을 묻는 법률 상담 사례가 최근 공개됐다. 채권자는 사장이 징역을 살고 나온 뒤에도 공증을 받아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지, 형사고소 전 민사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하는지를 질의했다.
형사처벌과 민사상 채권 회수는 별개 절차다. 형법 제347조에 따라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가해자가 실형을 살고 출소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원리금을 반환할 민사상 의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채무자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려면 민사집행법 제24조에 따라 집행권원을 확보해야 한다. 공증인법 제56조의2가 정한 공정증서는 판결문 없이도 집행권원의 효력이 있으나, 채무자가 직접 작성에 동의하고 신분증 등 서류를 내야 한다. 김태현 법무법인 로웨이 대표변호사는 "공정증서는 채무자가 임의로 작성에 동의해야 하므로 사장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작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해 회복을 돕는 배상명령 제도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와 제31조에 따르면 사기 등 사건의 1심이나 2심 유죄판결 시 법원이 물적 피해 배상을 명할 수 있고, 확정된 배상명령은 민사판결 정본과 같은 집행력을 지닌다. 그러나 피해 금액이 특정되지 않거나 배상책임 범위가 명백하지 않으면 법원은 배상명령을 각하한다.
실제로 법원의 배상명령 인용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과 한국경제 보도를 보면 배상명령 인용률은 2020년 49.8%에서 2023년 35.5%로 낮아졌다. 2024년 1~9월에는 전국 법원에 접수된 3만7,165건 가운데 1만131건만 인용돼 인용률이 27.3%에 그쳤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김형민 변호사는 "다단계·전세 사기처럼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한 사건에서 판사들이 손해액 산정을 부담스러워한다"며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에서 손해배상채권의 구체적 액수까지 심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매체에 홍민호 법률사무소 한서 변호사도 "사기 범죄 형사재판에서 피의자 상당수는 수거책·인출책 등 하위 조직원으로, 이들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짚었다.
사기 범죄 피해액의 실질 회수율이 3.5% 안팎에 머무는 현실에서 채권자가 권리를 지키려면 형사 절차와 별개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계좌이체확인증, 차용증, 문자·메신저 대화 기록 등 금전거래 내역을 증거로 내야 하며, 채무자가 잠적해 소장 송달이 되지 않더라도 공시송달 제도를 활용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있다. 민법 제162조와 제165조에 따라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새로 적용돼 채무자가 출소한 뒤까지 집행력을 유지할 수 있다.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는 민사집행법 제61조와 제74조에 따른 재산명시신청과 재산조회를 거쳐 채무자 명의의 부동산, 금융재산, 자동차 등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 김태현 대표변호사는 "사장이 징역을 살고 나온 후에도 민사확정판결이나 집행력 있는 공정증서가 있으면 강제집행은 가능하지만, 사장 명의의 실제 재산이 존재해야만 실질적 회수가 이루어진다"며 "형사고소 접수 전이라면 신속하게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우선적으로 집행권원을 확보해두는 것이 추후 재산추적 및 강제집행에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