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날 집주인과 세입자가 집 상태를 확인하다가 수리비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적지 않다.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집주인이 임의로 예상 수리비를 빼고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전체 반환을 미루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한국부동산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퇴거일에 벽지 변색, 바닥 긁힘, 못 자국 등을 두고 수리 범위와 비용 합의가 결렬되는 분쟁이 빈번하다.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수리비를 산정해 보증금 반환을 보류하면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나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민법 제654조가 준용하는 제615조는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할 때 원상에 회복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법원은 임차인이 통상적으로 사용한 뒤 생기는 상태 악화나 가치 감소를 뜻하는 '통상의 손모'는 임대차계약 본질상 예정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별도 특약이 없는 한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2005가합100279, 2019가합4453).

실제 서울중앙지법은 임대인이 건물 훼손 등을 이유로 원상복구 비용 1억5,000여만 원을 청구한 사건에서 감가상각과 통상의 손모를 제외하고 임차인이 부담할 잔존가치 비용 등을 약 4,500만 원으로 제한해 인용했다(2019가합4453). 오피스텔 만료 후 임대인이 도배·장판 교체비 등 870만 원을 요구하며 보증금 중 1,000만 원 반환을 거부한 사안도 있었다. 법원은 입주 당시와 비교해 못 자국과 바닥 눌림 등이 통상의 손모에 해당한다며 임차인 전부 승소로 판결했다.

보증금에서 수리비를 공제하려면 임대인이 세입자의 과실과 구체적인 손해액을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은 임대차보증금이 훼손된 건물 부분의 원상복구 비용 상당 손해배상채권 등을 담보하지만, 그 채권 발생에 관한 주장과 입증책임은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판시했다(95다14664). 임대인이 원상복구할 의사 없이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타인에게 다시 임대하려는 경우에는 원상복구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본다(2002다52657).

수리비 다툼을 이유로 보증금 전체를 돌려주지 않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임차인이 32만6,000원이 드는 전기시설 원상회복을 하지 않은 채 명도 이행을 제공한 사안이 있었다. 대법원은 임대인이 이를 이유로 잔존 보증금 1억2,522만6,670원 전액의 반환을 거부하며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의칙(민법 제2조)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99다34697).

전문가들은 수리비 산정 근거와 입증 자료 확보가 핵심이라고 짚는다. 법무법인 쉴드 정진욱 변호사는 "원상회복 의무는 임차인의 고의·과실로 인한 파손에 한정되고 통상 사용에 따른 자연 마모나 노후화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산정 기준과 정식 영수증 없이 이루어진 일방적 공제는 절차적으로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윤석 변호사는 "세입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가 생긴 경우에만 공제가 가능하며, 임대인이 실제 수리비 발생을 객관적 영수증이나 견적서로 증명하지 못하면 일방적인 공제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합의가 결렬됐을 때 임대인이 사소한 하자를 이유로 보증금 전액 지급을 거절하면 이행지체에 빠진다. 이 경우 민사 법정이율 연 5%,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배상해야 할 위험이 있다. 임대인은 다툼이 없는 잔여 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거나, 임차인이 수령을 거절하면 민법 제487조에 따른 변제공탁을 활용해 채무를 면해야 한다.

임차인은 일방적인 공제 통보를 받으면 상세 견적서와 영수증을 요구하고 입주·퇴거 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법무법인 영웅 박진우 변호사는 "원상회복의무 분쟁 소송에서는 세입자가 '정상 범위 내 사용'이었음을 입증하거나 임대인이 '세입자 과실로 인한 손상'임을 입증하는 구도로 진행되므로 증거의 질이 결과를 좌우하며, 협의가 되지 않으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신청이나 소액심판·지급명령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부동산원이나 LH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은 통상 접수 후 60일 이내에 처리되며, 임차인은 내용증명 발송이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절차도 밟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