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규명결정을 받았더라도 소멸시효가 지나 패소 판결이 확정됐던 과거사 희생자와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 개정으로 종전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배제돼 피해자들이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취지다.
대법원(주심 오석준 대법관)은 2026년 9월 23일 한국전쟁 전 희생된 민간인의 유족 A 씨 등 6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5다213197).
사실관계
A 씨 등의 가족은 1949년 7월경 한국전쟁 발발 전 경북 영덕에서 군경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적법 절차 없이 총살당했다. 유족들은 2012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청구기각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3년 8월 망인을 포함한 민간인 20명 살해를 불법으로 확인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회복 조치를 권고하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2024년 1월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원심 판단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인 대구지방법원은 유족들이 패소했던 종전 사건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이번 사건에도 미친다고 보아,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유족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건이 상고심에 머물던 2026년 2월 26일 전부 개정돼 시행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개정 과거사정리법) 제61조와 부칙 제5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개정 과거사정리법 제61조는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과거사 사건 피해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민법상 장기소멸시효(10년)와 국가재정법상 5년 소멸시효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부칙 제5조 단서는 법 시행 전에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사람 가운데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청구기각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도 법 시행일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특례를 뒀다.
대법원은 "개정 과거사정리법 제61조와 부칙 제5조는 과거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의 희생자 및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마련됐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가가 장기소멸시효기간을 배제하거나 스스로 시효이익을 포기하고, 피해자 등이 소송을 새로 제기하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청구기각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도록 함으로써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총체적으로 구제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개정 과거사정리법 시행 이전에 희생자 및 피해자에 대해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졌다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청구기각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유족과 피해자는 전소의 청구금액이나 패소 판결 액수와 상관없이 법 시행일부터 3년 내에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는 개정법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이던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개정 과거사정리법 시행 전에 진실규명결정을 통지받은 희생자와 유족이 다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법 시행일인 2026년 2월 26일부터 3년이 되는 2029년 2월 25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