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가 타인 명의로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허위 계약을 맺고 회사 자금 약 50억 원을 넘겨 직원들의 임금을 장기간 체불했다면, 형식적인 계약서가 있더라도 형법상 업무상배임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겉으로 합법적인 거래 형태를 갖췄더라도 실질적인 용역이나 물품 제공이 없었다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범죄 행위로 인정된다는 취지다.
실제 법률 상담 사례에 따르면 A 회사 대표이사는 타인 명의로 B 법인을 세운 후 회사 간 계약서를 작성해 A 회사의 자금 약 50억 원을 B 회사로 이체했다. 자금이 바닥난 A 회사는 20명이 넘는 근로자의 임금을 2년 이상 지급하지 못했고, B 회사는 이후 회사 이름과 대표이사를 수차례 바꾸며 자금 추적을 피하는 정황을 보였다.
법조계에서는 형식상 계약서와 송금 내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과 제356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업무상 임무를 위반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특히 유출된 금액이 50억 원 이상에 이를 때는 특경법 제3조 제1항 제1호가 적용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량이 무거워진다. 대법원 역시 대표이사가 합리적인 채권 회수 조치 없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다른 법인이나 제3자에게 자금을 넘겨 회사에 재산상 손해 위험을 초래했다면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다(2015도12633 판결 등).
민우기 변호사는 "대표이사가 회사의 이익과 무관하게 자신이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다른 법인으로 자금을 이전했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업무상배임이 문제될 수 있다"며 "계약서와 자금이체 내역뿐 아니라 두 회사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법인등기부, 회계자료, 이사회 의사록, 세금계산서, 실제 거래가 존재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수금 변호사도 "계약서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계약 내용에 상응하는 물품이나 용역이 제공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거래 없이 계약서만 작성해 자금을 이전했거나 정상 가격을 현저히 초과해 지급했다면 대표이사의 임무위배와 손해가 인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약 50억 원이라는 금액은 취득 이익액에 따라 특경법 적용까지 검토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근로자 임금 체불에 따른 별도 형사 책임도 뒤따른다. 근로기준법 제36조와 제43조는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임금 전액을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는 같은 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체불 피해를 본 근로자는 관할 고용노동청에 근로기준법 위반 진정과 고소를 제기하는 한편, 수사기관에 대표이사의 업무상배임 및 특경법 위반 혐의 고발을 검토할 수 있다. 아울러 근로복지공단의 대지급금 제도로 체불 임금 일부를 신속히 구제받고, 임금채권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나기 전에 민사소송 제기와 함께 대표이사 및 B 회사의 은닉 재산 가압류 등 보전처분 절차를 밟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