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공석 사태가 7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권한을 법률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해산 규정을 손질해, 대통령이 거부한 후보군 안에서 재제청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 경계를 둘러싼 헌법적 충돌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6년 8월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다. 청와대는 사전 협의 결렬과 다양성 부족을 이유로 손 부장판사의 국회 임명동의안 제출을 보류하고 재제청을 요구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공문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갈등의 핵심은 대한민국헌법 제104조 제2항이 규정한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의 해석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가 대법원장의 제청에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명문으로 정한 기관 간 권한 분배와 사법권 독립에 반하여 위헌인 조치"라며 "대법원장이 협의를 안 해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조원철 법제처장은 10월 15일 법사위 국감에서 제청권은 단순 제안 성격이라며 재제청 거부는 직무유기 취지라고 맞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법 개정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당대표는 8월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8항이 대법관 후보 제청 시 추천위원회를 즉시 해산하도록 한 점을 법적 맹점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 개정 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이 후보자를 반려할 경우 새 추천위를 꾸리지 못하게 하고 기존 추천위 후보군 안에서만 재제청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구상이다. 10월 16일에는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와 국감 증인 선서 거부 등을 이유로 대법원장 탄핵 추진 논의까지 공식화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법관 제청권이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 독립의 핵심 권한이며, 제청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는 행정부의 행태가 국회 권한을 침해한 위헌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 역시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날을 세웠다. 관례상 후보 낙마 시 추천위를 재구성해왔던 2012년 선례와 달리 입법으로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묶으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유의 권력 충돌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재판을 받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3월 3일 노 전 대법관 퇴임 이후 7개월 넘게 이어진 대법관 공석으로 대법원 소부와 전원합의체 상고심 심리는 줄줄이 지연되는 실정이다. 정기국회 법안 심사와 국감 종합감사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대법원장 탄핵소추안 발의가 가시화되면 사법 공백을 둘러싼 혼란은 한층 더 깊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