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취재나 학술 목적이라 하더라도 정부 사전승인 없이 북한 물품을 국내로 들여오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법률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법원이 헌재의 4년 넘는 심리 지연을 문제 삼아 사법심사 개시를 선언한 지 약 3주 만에 나온 종국 판단이다.

헌재는 2026년 9월 17일 언론인 진천규 통일TV 대표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1항 전문 등을 대상으로 낸 헌법소원심판(2022헌바132) 사건에서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청구인 대리는 법무법인 동화의 신윤경·장경욱 변호사가 맡았다.

사실관계

진 대표는 2018년 8월 29일 북한을 방문해 취재한 뒤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 서적 19점을 비롯한 물품 146점을 반입했다. 검찰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진 대표를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정식재판을 청구한 진 대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벌금 300만 원의 유죄 판결(2020고정1987)을 받았다. 이후 항소심 계속 중이던 2022년 6월 16일 반입 승인 및 처벌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 제27조 제1항 제3호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물품을 반입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재판부 판단

헌재는 국가 안보와 남북관계 특수성을 들어 처벌 규정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을 고려할 때 북한 물품의 국내 반입을 정부가 사전에 관리하고 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계선 재판관은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정 재판관은 "물품 자체의 유해성이나 위험성과 관계없이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사법권 충돌과 파장

이번 결정은 법원과 헌재 사이의 이례적인 힘겨루기 끝에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0부는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자 2022년 7월 기일을 추정한 뒤 4년간 재판을 멈췄다. 헌재 결정이 미뤄지자 재판부는 지난 8월 24일 공판을 재개하며 "헌재가 4년 동안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당사자의 청구권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헌법 제107조 제2항에 따라 헌재의 재판 지연 부작위를 둘러싼 위헌·위법 심사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상 처리 기간인 180일을 넘겨 1,554일 동안 심리가 멈춰 섰던 사건은 법원의 압박 이후 3주 만에 마무리됐다.

합헌 결정에 따라 진 대표의 2심 재판은 조만간 유무죄와 양형을 가리는 판결 절차에 들어간다. 아울러 상업적 거래가 아닌 보도나 연구 목적이라도 승인 없는 북한 물품 반입은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기준도 재확인됐다. 헌재는 이날 전자담배 니코틴 용액 1밀리리터(mL)당 370원의 세금을 매기도록 한 개별소비세법 조항 위헌소원(2026헌바70 등) 사건에서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