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삭제된 파일을 되살리고 암호를 푸는 디지털 포렌식 분석 단계에서도 피의자와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사기관이 이를 탐색에 앞선 단순 기술적 준비 작업으로 여겨 당사자 입회를 배제했다면 압수수색 절차 전체를 취소해야 할 중대한 위법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압수 처분에 불복해 A 씨가 낸 준항고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2024모418). 피압수자의 절차 참여권을 형해화하지 않도록 영장 집행 통지의무의 예외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판단이다.

사실관계

수사기관은 A 씨의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를 확보하고자 정보저장매체 원본을 사무실로 반출한 뒤 복제본인 이미지 파일을 만들었다. 이어 손상·삭제된 파일을 복구하고 암호화된 데이터를 복호화하는 디지털 증거분석을 거쳐 혐의 관련 정보를 탐색·선별했다.

문제는 증거분석 단계에서 불거졌다. A 씨는 수사기관에 압수수색 전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으나, 수사기관은 디지털 증거분석 절차에 A 씨와 변호인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참여권 침해를 이유로 압수수색 처분 전체를 취소해 달라는 준항고를 법원에 냈다.

1심·원심 판단

원심은 디지털 증거분석 절차에서 피압수자 측 참여권을 배제한 사실 자체는 위법하다고 봤다.

다만 원심은 이러한 흠결이 압수수색 절차 전체를 위법하게 만들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증거분석이 관련 정보를 본격적으로 골라내는 탐색·선별 절차에 앞선 기술적 조치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A 씨의 준항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전자정보 압수수색이 끝난 뒤에는 특정 단계만 떼어 취소할 수 없는 만큼, 전체 과정을 하나의 절차로 묶어 위법의 중대성을 따져 처분 전체를 취소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디지털 증거분석의 실질적 위험성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디지털 증거분석은 전자정보의 생성·저장·관리 방식이 복잡해진 환경에서 압수 대상인 전자정보의 내용과 범위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분석 절차에서도 사건과 무관한 정보가 수사기관에 노출될 수 있고 전자정보가 왜곡·훼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참여권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전문 포렌식 프로그램이 아니라 통상적인 프로그램만으로도 내용을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정보가 추출된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법원은 "A 씨가 전체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음에도 기회를 보장하지 않은 것은 절차 참여 보장 취지를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서 압수수색 절차 전체를 위법하게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사건을 돌려받은 관할 법원은 대법원 기준에 맞춰 해당 전자정보 압수수색 처분을 취소할지 다시 심리해야 한다. 복구와 암호 해제 등 기초 분석 작업부터 피의자 입회를 배제해 온 수사기관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