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피해 몸을 숨긴 피해자가 이혼이나 양육권 소송을 진행할 때,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법원이 직권으로 새 주소를 비공개 처리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소송 서류 송달이나 기록 열람 과정에서 피신처가 가해자에게 노출돼 보복 범죄로 이어지는 비극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 등 12인은 2026년 10월 2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22060)을 발의했다.
종전 제도의 한계
현행 가사소송법은 민사소송법 제163조 제2항을 준용하고 있다. 소송 서류에서 주소 등 개인정보를 가리려면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 우려가 있는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조치를 신청해야만 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경황이 없어 신청하지 못하면, 가사소송 서류 송달이나 기록 열람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거주지 주소가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접근금지 조치를 받고 피신한 피해자의 주소가 이혼소송 과정에서 노출된 뒤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경기 광주 아내 살인사건이나 서울 송파 장모 살인사건 등 중대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개정안 주요 내용
개정안은 가사소송법에 제10조의3과 제10조의4를 신설해 법원의 능동적 개입 의무를 명시했다. 이혼, 재산 분할, 친권, 자녀 양육이나 면접교섭권 등에 관한 가사사건이 접수되면 법원이 개인정보 노출 가능성과 보호조치 신청 방법을 당사자에게 안내하고, 가정폭력이나 스토킹으로 인한 위해 우려 여부를 선제적으로 확인하도록 했다.
특히 법률에 따른 피해자보호명령이나 신변안전조치가 내려진 사건은 '고위험가사사건'으로 분류한다. 고위험사건에 해당하면 당사자의 별도 신청이 없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주소 등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채 의원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만 숨어 지내며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보복 범죄와 2차 피해를 막고,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향후 절차와 파장
이번 법안은 채 의원이 함께 추진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보호 3법' 가운데 하나다. 법안이 통과되면 가사사건 접수 단계에서 법원의 위험성 확인 절차가 의무화되고, 피해자가 보호 제도를 미처 인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신상 노출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23일 국회에 접수된 개정안은 향후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 심의 절차를 밟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