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살해한 사람을 일반 살인범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존속살해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다시 나왔다. 장기간 간병이나 학대 피해 같은 참작 동기가 있더라도 추가 법률상 감경 사유가 없다면 정상참작만으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없는 양형 체계가 유지된다.
헌재는 2026년 10월 22일 청구인 권 모 씨가 제기한 형법 제250조 제2항 위헌소원 사건(2022헌바95)에서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형법 제250조 제2항 중 '자기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 부분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 씨의 대리는 법무법인 지평의 박성철, 박봉규, 최명지, 이온달, 권준희, 홍혜인 변호사가 맡았다.
사실관계
외동아들인 권 씨는 뇌출혈 증세로 홀로 생활할 수 없던 부친을 간병하다 치료비 부담 등으로 2021년 4월 23일 퇴원시켰다. 권 씨는 퇴원 이튿날부터 처방약 제공을 중단하고 영양공급용 치료식을 7일간 10개만 주었다. 이어 그해 5월 1일부터 8일까지 약 8일간 음식과 물, 약을 끊고 방에 들어가지 않은 채 부친을 방치했다. 부친은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이 발병해 숨졌다.
권 씨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1심(대구지방법원 2021고합248)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대구고등법원 2021노351)도 항소를 기각했다. 권 씨는 상고심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대법원은 2022년 3월 31일 상고와 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징역 4년을 확정했다(2021도15893, 2022초기225). 권 씨는 2022년 5월 2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 판단
헌재 다수의견은 존속살해 가중처벌이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과 평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계존속 살해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출생과 양육과정에서 형성되는 특별한 유대와 신뢰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가족공동체의 존립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일반적인 살인행위보다 위법성 및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집행유예 선고가 원천 차단된다는 청구인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은 5년 이상의 징역이어서 정상을 참작해 감경(형기의 2분의 1)하면 징역 2년 6개월로 낮아져 집행유예(징역 3년 이하)가 가능하다. 반면 하한이 7년인 존속살해죄는 정상참작감경을 거쳐도 징역 3년 6개월이 하한이 된다. 재판부는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인 5년 이상의 징역과 격차가 크지 않다"며 "심신미약 등 법률상 감경사유가 적용될 수 있고 구체적 정상에 따라 책임을 반영할 길이 열려 있어 집행유예가 제한된다는 사정만으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직계비속이나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와 차별된다는 주장 역시 물리쳤다. 재판부는 "직계존·비속 관계와 부부관계 등은 관계의 구조와 상호 요구되는 의무의 성격이 동일하지 않다"며 "직계존속에 대한 살인을 전통적 가족관계와 윤리의식에 비추어 비난가능성이 높은 유형으로 평가한 것은 입법재량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반대의견과 파장
마은혁 재판관은 비례원칙 위배를 이유로 위헌 반대의견을 냈다. 마 재판관은 "존속살해 중에는 장기간 직계존속의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리다 분노가 폭발해 일어나는 범죄도 적지 않다"며 "피해자가 양육 책임을 저버리고 폭력을 일삼은 경우까지 존경과 보은이라는 가치를 근거로 처벌을 가중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패륜성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동일시해 법정형 하한을 가중함으로써 법관이 정상참작감경을 하더라도 징역 3년 6개월 이상의 무거운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며 "일반 살인죄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존속 관계를 형의 가중요소로 삼아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으로 2013년 헌재가 내린 합헌 판단(2011헌바267)은 13년 만에 재확인됐다. 법조 실무에서는 '간병 비극'이나 가정폭력 방어 과정에서 일어난 존속살해 사건이라도 자수나 심신미약 같은 별도 법률상 감경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 어려운 제약이 유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