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출수 누출이나 화재 등으로 환경오염 위험이 급박한 경우, 사전 시정명령 없이 행정청이 폐기물을 먼저 강제 처리하고 배출업체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법 개정 전에 위탁·매립된 폐기물이라도 위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면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헌재는 주물 제조업체 등 사업장폐기물 배출업체 22곳이 폐기물관리법 제49조 제2항 제3호 중 제48조에 관한 부분 등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2023헌바47 등)에서 2026년 10월 22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징수권 보전을 위한 법원 가압류 조항 등을 다툰 나머지 청구는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며 모두 각하했다.
사실관계
유한회사 해동환경은 점토점결 폐주물사, 광재, 무기성오니 등을 재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업체였다. 청구인 업체들은 2011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해동환경의 영업 대상이 아닌 '화학점결 폐주물사' 처리를 이 회사에 위탁했다. 해동환경은 이를 성토재로 만들어 전북 익산시 낭산면 임야 폐석산에 매립했다. 이후 매립지에서 유해 침출수가 발생해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면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 중대한 환경오염 사고가 벌어졌다.
익산시장은 침출수 누출로 주민 건강과 주변 환경에 심각한 위해 우려가 커지자,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국비 64억 원을 포함한 사업비 91억5,857만 원을 투입해 폐기물 이적과 복개공사 대집행을 벌였다. 당시 관할 지자체는 사전 조치명령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한 폐기물관리법 제49조 제2항 제3호를 근거로 들었다. 이어 2021년 7월 26일 청구인들에게 대집행 비용을 8월 26일까지 납부하라는 명령을 통지했다. 업체들은 취소소송을 제기한 뒤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 판단
쟁점은 2019년 11월 26일 개정돼 신설된 '사전명령 없는 긴급 대집행' 조항을 개정 전 위탁 행위에 적용해 비용을 물리는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반하는지 여부였다. 과거 법령에 따르면 행정청은 폐기물관리법 제48조에 따른 조치명령을 먼저 내리고, 상대방이 불이행할 때만 행정대집행법상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헌재는 소급입법금지원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폐기물이 긴급조항 시행 전에 처리되었더라도 그 시행 이후에도 계속하여 방치되거나 매립되어 있는 상태에 있다면, 이는 종료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과거 행위에 사후적 제재를 부과하는 규정이 아니라 오염 위험을 방지·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신뢰보호원칙 위배 여부를 두고도 청구인들의 신뢰보다 공익이 우선한다고 봤다. 헌재는 "주민의 건강 또는 주변 환경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폐기물을 신속히 제거해 주민의 건강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비용을 방지하려는 공익은 매우 중대하다"며 "침출수가 누출되거나 화재가 발생한 때에는 조치명령을 내리고 이행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해를 발생시키고 폐기물의 처리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조치명령을 생략할 수 있는 요건을 주민 건강이나 환경에 심각한 위해 우려가 있어 긴급한 때로 한정하고 있다"며 "사업장폐기물배출자는 위해 발생 전에 스스로 폐기물을 제거함으로써 대집행 및 비용징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가혹한 부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판결 의의
이번 결정으로 지자체가 방치된 유해 폐기물에 사전 시정명령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행정대집행을 한 뒤 배출업체에 비용을 구상하는 행정 실무는 확고한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대집행 비용 부과 처분을 다투는 본안 행정소송에서도 배출업체 측 위헌 주장이 힘을 잃으면서, 부적정 처리 위험을 방치한 원인 배출자들의 관리·감독 책임이 무거워질 전망이다.



